본보 필진인 김천권 전 인하대 교수가 최근 <진화의 도시>를 발간했다. 도시개발의 역사와 발달 과정을 알리기 위해 책을 펴냈다고 밝혔는데,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전염병이 도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다. 코로나 사태가 인류에게 막대한 영향에 미치고 있는 현실에서 상기해야 할 대목이 적지 않아 책을 토대로 글을 구성해본다.

인류 역사의 흐름을 보면 전염병이 도시 변화, 특히 사회 변화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세시대에 유럽 전역을 휩쓴 페스트(흑사병)는 종교 중심 사회가 붕괴되고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 사회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효과가 없었고, 왕족·귀족·성직자도 똑같이 희생되는 것을 보고 권위·종교 중심의 사회가 급격히 흔들렸다. 결국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의 씨앗이 됐고, 계몽주의 철학과 사상이 탄생했다.

전염병이 인류에 미친 영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9세기 들어 산업혁명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주택 부족으로 일반 시민들은 폐수로 오염된 공장 인근 빈민촌에 밀집 거주하면서 전염병에 걸리기 쉬운 환경에 노출됐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혁명을 선도한 영국은 전염병 퇴치를 위해 상하수도 정책을 도입했다. 전염병에 취약한 환경을 방치하면 프랑스대혁명과 같은 혼란이 일어나 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상하수도 정책은 주택·교통·복지 정책으로 이어져 현대사회로 발전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150년이 지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해 새로운 생활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 전과 후가 크게 다를 것이라고 예측하는데,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코로나가 극복되면 대면활동이 더 강화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DNA를 지닌데다 코로나 사태는 인류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었다.

또 하나, 코로나 사태를 통해 '소비가 없으면 경제는 죽는다'는 원리가 확실히 증명되었다. 국민들에게 보다 평등하게 분배되고 소비가 진작되어야 시장과 경제는 돌아간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사회는 점차 위험사회로 치달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자본주의 맹점과 코로나의 연관성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염병에 잘 대처한 도시가 경쟁력 있는 도시로 부상하고 헤게모니를 쟁취한 역사에서 보듯이, 코로나가 유익한 학습이 되어 한국 사회와 도시를 도약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