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그대에게 (14)

 인구는 옷도 벗지 않은 채 어젯밤 누웠던 병상에 몸을 뉘였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잠을 잤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잠결에 누군가가 깨우는 것 같아 눈을 떠보니까 생각지도 않던 보위지도원이 병상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구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았다.

 『동무, 낮에 썼던 자술서 어디 두었나?』

 인구는 멍한 표정으로 보위지도원을 바라보다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도원 동지 책상 위에 놔두었습네다.』

 『기런데 왜 내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가?』

 인구는 또다시 어리벙벙해졌다. 자술서를 다 쓴 뒤, 찬찬히 한번 읽어보면서 틀린 글자까지 고쳐 보위지도원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무실을 나왔는데 지금 와서 책상 위에 아무 것도 없다니까 뭐라고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보위지도원이 다시 물었다.

 『자술서가 몇 장이었는가?』

 『석 장이었습네다.』

 『책상위에 올려놓고 나올때 누구한테 부탁도 하지 않았는가?』

 인구는 그때사 앗차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책상 위에 놔두고 나오면 되는 줄 알고 그냥 나온 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실수처럼 느껴졌다. 그는 갑자기 죄인이 된 심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었다.

 『어카나? 내일 아침 일찍 상무(지휘부)에 보고해야 되는데… 지금 다시 한번 작성할 수 없겠는가?』

 인구는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보위지도원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 모양 암담해 하다 인구를 흔들었다.

 『이봐, 곽인구. 나를 생각해서 한 번만 더 수고하라. 낮에 어떻게 적었는지 기억은 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보위지도원의 다그침에 인구는 도리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쌍욕을 해대고, 구둣발로 정갱이를 내려 까는 다른 보위원들에 비하며 리상위는 그래도 사람이 좋아 보였던 것이다. 인구는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보위지도원이 고마워서 다시 한번 더 쓰겠다고 약속했다. 리상위는 잘 생각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자신과 같이 보위사무실로 올라가자고 했다. 인구는 마지 못해 보위지도원을 따라 대대 보위부 사무실로 올라갔다.

 『내일 아침 일찍 사단 보위부에 가지고 가야 하니까 좀 빨리 적으라.』

 보위지도원은 다시 자술서 용지와 원주필(볼펜)을 내어주고 장의자가 놓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인구는 낮에 썼던 자술서 내용을 더듬으며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나, 여기 누워 잠시 쉬고 있을 테니까니 다 쓰면 불러라.』

 보위지도원은 신발을 신은 채 장의자에 드러누웠다. 인구는 보위지도원을 위해서도 빨리 끝마쳐야겠다고 생각하며 기억을 짜냈다. 첫번째 쓰는 자술서보다 두번째 쓰는 자술서가 더 힘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