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그대에게 (24) 손경남은 장풍군 수매사업소 부기원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혼자 살아도 먹고사는 문제는 그렇게 어려움을 모르고 사는 자리였다. 그런데도 사단 보위부에 복무하는 세대주(남편)의 동료들은 올 때마다 푸짐한 선물 꾸러미를 메고 와 안겨 주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녀는 문중위와 박중위가 같이 들고 들어오는 입쌀마대를 마루방 한쪽 귀퉁이로 밀어 놓으며 세 군관들과 같이 마루방(거실)에 잠시 앉았다.

 리상위에게 백중위의 제삿날을 알려주며 놀러오라고 말은 했어도 이렇게 정말 세 사람씩이나 찾아와 줄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어드렇게 하면 좋을까요. 방에 상을 차려 놓았는데 제 오라버니와 같이 술을 한 잔 올리갔습네까. 아니면 제사를 마칠 때까지 저쪽 옆방에서 잠시 쉬갔습네까?』

 손경남은 수건을 건네주는 리상위를 보고 물었다. 박중위가 머뭇거리는 문중위와 리상위를 대신해 다시 물었다.

 『저희들이 같이 들어가도 괜찮으시다면 상좌 동지와 같이 술을 한 잔씩 올리갔습네다. 1년 전만 해도 흉금을 털어놓고 같이 지내던 동무들입네다.』

 손경남은 잘 알고 있다면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박중위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손경남의 앉은 자태를 지켜보다 꿀꺽 침을 삼켰다. 검은 주름치마에다 비둘기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백중위 안해의 청초한 자태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세대주를 잃고 울고 있었을 때는 백중위의 안해가 미인이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이제 보니 전형적인 조선여인의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 같았다. 선한 눈매와 반듯한 이마도 시원해 보였지만 갸름하게 쪽 빠진 턱선과 오뚝한 콧날이 앉은 자태만큼이나 단정함을 안겨 주었다.

 『그럼 시장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요.』

 손경남은 살며시 일어나 뒷걸음치듯 부엌으로 들어갔다. 박중위는 물러나는 손경남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다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10년이 넘도록 군대생활을 하면서도 군의 고급간부들이 사는 아파트나 연립주택은 처음 들어와 본 것이다.

 상급참모가 사는 연립주택의 현관이 꽤나 넓다 싶었다. 방이 세 칸이나 되었고, 창고가 딸린 부엌도 입식으로 개시대(싱크대)가 놓여 있었다. 마치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박중위가 물었다.

 『요사이 평양에 새로 지은 높은 아파트들은 죄다 이 집처럼 위생실과 세면장이 집집마다 있다면서?』

 리상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중위가 다시 리상위의 귀를 빌리며 낮게 속삭였다.

 『난 오늘 충격 받았어.』

 『왜?』

 지난해 장례식 때도 군단 상급참모를 보긴 했지만 군단 상급참모가 백중위의 처남인 줄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