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가 말했던 어떤 제국의 지도는 현실을 재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냉엄함을 일깨운다. 정밀성에 집착하느라 도면만 만지작 대다보면 땅 크기와 1:1로 비례하는 초정밀 지도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크기에 덮여 눈앞의 땅도 못 보게 된다. 인천교육이 동아시아를 아우를 지평에 이르려 항해에 오를 때부터 손에 쥔 지도가 궁금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나침반이 정방향을 짚어줘도 의욕만큼 앞으로 나가기 어려운 게 동아시아 정세의 항로다. 어설픈 지도로는 나아가는 만큼 성공이라는 자족감은 남길 수 있지만 '이 산이 아닌가벼'라며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인천시교육청은 '인천을 품고 세계로'라는 교육 자료집을 내놓았다. 권두언을 읽으면 인천에서 동아시아를 통해 세계로 향하는 교육 지도라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그런데 학교에 배포한 자료에는 인천의 10개 구_군 중 옹진군만 빠져 있다. 경인일보가 이를 지적하자 올해 추가 발행할 '시즌2'에 옹진을 포함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사후약방문 같아 석연치 않다. '학생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를 위주로 책자에 담았다는 변명은 더 옹색하다. 강화도만큼 가까운 영흥도_선재도가 옹진군에 엄연한 데다 인천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섬과 바다를 '시즌'으로 나누는 게 억지스럽다.

타지에서 인천을 보면 바다와 하늘이 먼저 보이겠지만 인천에서 인천을 그리려들면 어디를 넣고 빼자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실 그대로를 담을 수 없는 지도는 어차피 압축이고 생략이다. 세계로 나가겠다는 지향점만 아니라면 옹진은 물러서서 육지 인천을 응원할 것이다. 하지만 인천이 동아시아와 이어지겠다면서 섬에 눈감으면 지도에서 바다가 함께 사라진다. 범위를 좁혀 동북아 지도만 들여다봐도 땅보다 바다가 먼저 눈에 띈다. 동북아에서는 독도 없이 우리와 일본을 알 수 없다. 사할린 위쪽 '북방영토(남쿠릴열도)'는 러시아와 일본이, 센카쿠열도는 중국과 일본, 대만이 각축하는 섬이다. 바다와 섬은 지도 위에서 본토와 따로 있지 않다.

동북아의 초점을 인천으로 좁혀오면 '동아시아 지중해'로서 황해와 만나야 하고 최원식 선생님의 '바다가 다시 들끓는다. 인천이 부활한다'(파국론에 등을 돌리고)에 감응하려면 연평도와 백령도 바다에 드리운 역사와 마주해야 한다. '남북분단의 평화적 소멸이야말로 동아시아 분쟁의 소실점'(위 책)이라면 소실점이 맺힐 바다는 옹진이다. 우리 근현대사 필름을 되감아 합성해 전쟁을 평화로 반전할 좌표 한 지점을 찍는다면 옹진 바다에 꽂힐 것이다. 인천을 품겠다는 지도가 옹진을 놓아두고 갈 수 있는 세계는 지구본 위에 없다.

제주교육청이 동아시아 교육 메카를 자처하고 나선지 오래다. 일본 오키나와와 대만 가오슝은 물론 동티모르까지 평화_인권교육 교류를 통해 바다로 이어진 동아시아교육공동체 기반을 구축해 가겠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제정을 주도해 온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 활성화법'이 다음달 발효를 앞두고 있다. 행정안전부도 6월에 '한국섬진흥원'을 출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천교육청이 만들어 가려는 동아시아 교육이 섬과 바다를 품으면 여러 기관이나 타 교육청과 협력 방안이 다채로울 수 있다.

'2009 인천세계도시축전'은 우리가 세계를 향한다고 세계가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남겼다. 참패했던 행사를 제대로 되짚지 못한 채 치른 '2014 인천아시안게임'은 세계로 도약하려는 꿈의 높이 만큼 깊은 내상을 남겼다. 당시 범시민지원협의회 시민평가분과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민들 중 43%가 '실패했다'('성공적' 12%)고 진단했다.

도시 언저리에 구호만 남은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Diversity Shines Here)'는 빛 좋은 구상이 성과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가르치고 있다. 세계도시축전은 빚만 남겼고 아시안게임의 빛은 이내 시들었다. 인천 시민들에게 보여 줄 새로운 교육 지도에는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담기길 바란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옹진 섬들이 지도 위에 보여야 아시아도 세계도 완성된다.

/임병구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