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자라는 아이들] 1. 러시아어까지 등장한 학교


국내 다문화 이슈는 그동안 이주민 노동자, 결혼이주여성에 쏠려 있었다. 다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국가 간 경제·문화 차이와 노동을 향한 경시 풍조는 색안경이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 다문화 아이들은 숨죽이며 몸집을 키웠다. 이주민 노동자, 결혼이주여성이 키운 세부 카테고리인 셈이다. 조용히 자라고 있는 다문화 아이들의 현실을 3차례에 걸쳐 싣는다.

'Не залезай на унитаз.'

인천 연수구 함박초등학교 1층 화장실 입구에 낯선 키릴 문자가 적혀 있다. '변기 위에 올라가지 마세요'라는 뜻이다. <사진>

화장실을 찾은 한 학생을 붙잡고 "변기 위에 발 올리는 친구들이 많으냐"고 묻자 아이는 "러시아에서 온 애들만 그래요"라고 답했다.

함박초에는 올해 전교생 565명 중 139명이 다문화 아이들이다. 영국, 일본부터 예멘, 이집트까지 한국까지 포함해 부모 출신국만 15개 국가다. 이 중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우크라이나까지 고려인 관련한 학생들이 77%인 107명이다. 화장실 안내 문구에 러시아어가 걸린 이유다. ▶관련기사 19면

학교측은 지난 2월까지만 해도 2019학년도 다문화 학생 수를 80~90명 정도로 예측했다. 주변 고려인 동포 마을인 함박마을을 중심으로 외국인 수가 늘면서 다문화 아이들 비중은 올해 25%까지 증가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73명이던 함박초 다문화 학생이 1년 만에 139명으로 2배 가까이 뛴 것도 고려인 학생 확대가 주요 요인이다.

함박초와 멀지 않은 모 초등학교 소속 A 교사는 요즘 수업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으로 스마트폰 번역기를 꼽는다.

A 교사는 "동네 특성상 러시아 등지에서 넘어온 고려인이나 외국인 자녀들이 많다. 다들 학습 언어를 알아들을 정도가 안된다. 표정 보고 못 따라오는 거 같으면 번역기에 쳐서 알려주고는 한다"며 "그렇다고 매번 번역기로 알려주면 다른 학부모들에게 학습결손으로 민원이 온다. 한국어 수업이 있기는 한데 그러면 현지 아이들이랑 격리가 되니까 예체능 과목을 최대한 활용해 반이 화합되도록 이끌어 가고 있다"고 전했다.

함박초 전경자 교감은 "교육계에선 한 집단 내 공통점을 가진 아이들이 15% 이상이면 자신들만의 사회를 이룬다고 본다. 함박초에선 작년 전교생 513명 중 고려인 아이들이 60여명, 12%대를 보이던 게 올해 18%를 넘어섰다"며 "학교 일대에 외국인끼리 결혼한 부부가 많아 아이들이 한국말이 서툰데, 요즘에 와선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어가 아니어도 곁에 말이 통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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