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는 지금쯤 ?(20)

결의문 낭독이 끝나자 안전부장과 정치부 부부장은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뒤이어 부부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뒤를 따라 13개과 과장들이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사무실로 올라갔다.

 『이거 참, 야단났네. 진행중인 수사를 15일씩이나 미뤄놔야 하니.』

 1층 복도를 따라 감찰과(수사과)로 들어온 백창도 과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뒤따라 들어온 감찰과의 책임지도원도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강력사건을 수사하는 감찰과는 좀 봐주어야지 무조건 15일씩 3교대로 내리 먹이면 랑패잖아….』

 『어제 부부장 동지와 협의가 되었다면서. 감찰과는 전체 성원의 사분의 일만 인원을 빼내기루.』

 『오늘 아침 정치부 부부장 동지 결심 받는 자리에서 또 뒤집어졌데, 타자수 손동무의 말에 의하면.』

 『부부장 동지는 그저 실적주의와 체면유지만 강조하신다니까. 낙원군 인민들의 치안 문제는 까맣게 잊어버리시고, 이러다 강력사건이라도 터지면 어카나?』

 『그만들 하라우. 감찰과에서 불평불만 많다는 소리 나오면 또 시끄러워.』

 백창도 과장은 소속 안전원들의 입 단속을 한 뒤 사무실을 나갔다. 다른 과는 15일씩 고정지원을 나가는 과원들이 어떤 준비를 하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는 자문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처럼 호안과에도 고개를 내밀었고, 공민과와 통신과도 슬쩍 들여다보며 한 마디씩 던졌다.

 『여긴 모내기전투 나갈 준비 안하네?』

 『준비랄 게 뭐 있습네까? 15일간 덮고 잘 모포하고 옷가지나 좀 넣어 가면 되갔지요.』

 통신과 문과장이 담배나 한 대 피우고 가라며 백창도 과장을 불러들였다. 백창도 과장은 사회안전부 13개 과장 중 제일 연장자였다. 그는 다리도 아픈데 좀 쉬어갈까 하면서 문과장 옆으로 다가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소좌 계급을 달고 다니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늙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어기, 경리과는 치약·칫솔·물컵·간장·된장·콩기름·맛내기(조미료)·옷감·신발·담배 등 골고루 준비하던데, 여사무원들은 거머리 붙는다고 긴 양말(스타킹)도 준비하고.』

 『경리과 동무들이야 물자가 풍부하니까 15일간 저희들 쓸 것 다 가지구 가겠지요. 안전과 젊은 아이들은 이번 모내기전투 나가서 개 한 마리 잡아먹구 오겠다고 준비들을 아주 잘하던데요.』

 백창도 과장이 빙긋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기요과(기밀 문건을 취급하는 과) 아이들은 돼지까지 잡아 먹구 오겠다고 물물교환 할 양복지 구하러 나가던데.』

 『조금 전에 보니까 산림과장도 준비를 어케 해야 좋으냐 하며 왔다 갔다 합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