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련 페이퍼 애니메이션 작가
장형순 종이모형 디자인 작가
▲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안양'을 작품 활동의 주무대로 삼고 있는 페이퍼 애니메이션 김혜련 작가가 작품 소재를 찾기 위해 오늘도 '안양'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김혜련 페이퍼 애니메이션 작가
책 귀퉁이 수천장 그림을 움직이듯 … 안양 구석구석 정체성 불어넣는 그녀 

책 귀퉁이 한 장 한 장 그림을 새겨 넣고 순식간에 책을 훑으면 살아 움직이듯, 만화 영화 한 편이 뚝딱 만들어진다. 학창 시절, 수업 시간을 틈타 불태우던 예술혼이랄까? 교과서를 하나의 캔버스로 만들어 버렸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이 작업은 훗날 '페이퍼 애니메이션'이라 불리며 애니메이션 산업의 집대성을 이룬 오늘날의 시초가 된다. 디지털 시대의 최첨단 도구들을 마다하고 여전히 수천 장의 그림을 그려 수고스러운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이가 있다. 페이퍼 애니메이션 김혜련(36) 작가를 '안양'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가가 작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작품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화에 대한 거리감을 좁힐 수 있도록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인덕원역을 지나 주택가로 이어진 골목길을 걷다 보면 김혜련 작가의 작업실 앞에 도착한다. 안양이라는 지역이 꽤나 친숙한 기자에게도 길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저 멀리 마중 나온 김혜련 작가가 보였다. "저희 동네가 워낙 복잡해서요" 인사말처럼 대신한 그의 첫마디가 "우리 아이가 워낙 산만해서요"라 말하는 여느 부모의 꾸지람을 동반한 '애정'처럼 느껴졌다.

'안양'은 그에게 특별한 지역임에 틀림없다. 김 작가가 나고 자란 고향이면서도 작품 활동의 주 무대가 되는 곳 또한 이곳 '안양'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내온 안양은 애착이 깃든 곳이면서 애증이 깊은 곳이기도 하죠.(웃음) 조금 더 좋게 변화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의 무분별한 발전을 막고 미화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상충되는 곳 같아요."

최근 김 작가는 도시 '안양'에 대한 단상을 그린 '안양, 오늘의 온도'展에 참여 작가로 활동했다. 안양에서 태어났거나 살아온 6인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페이퍼 애니메이션 '워크맨'을 공개하기도 했다.

'워크맨'은 1926년부터 줄곧 안양에서 지내온 김 작가의 조부와 인터뷰를 통해 지난 시대의 뼈아픈 비극, 빠르게 진화하는 도시를 살아가는 한 노인의 대조되는 삶을 12분짜리 영상에 담아냈다.
주재료인 오일 파스텔로 낱장 하나하나에 그려진 원화들은 디지털 방식이 주는 효율성과 대립되며 작품을 극대화시킨다.

"12분의 짧은 영상이지만 1000장이 넘는 원화 드로잉 작업을 해야 했어요. 일일이 그리다 보면 몸은 몸대로 망가지지만 개인적으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한 워크맨을 친척들이 감상하고 다시 할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보람도 느껴집니다."

안양 원도심 특유의 골목길 구석구석을 산책하듯 그려낸 페이퍼 애니메이션 '안양산책'도 '안양'이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다.
여러 양식들이 뒤죽박죽 섞인 원도심의 마을은 현대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함은 없지만 자연의 풍파를 견뎌 낸 세월 속의 어울림에 작가는 주목했다. 녹이 슨 작은 대문과 골목 밖에 나온 집안 살림살이들의 오래전 풍경들은 정겨움마저 느껴진다.

6년 전 안양 관양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이름과 일러스트를 그려 낸 '문패' 작업도 오랫동안 시장 내에서 '이름 없이' 활동해 온 이들에게 '이름'을 선물하고 싶었던 김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김혜련 작가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안양'이라는 도시, 그가 집착을 보인 까닭이 있었다.

"문화에 있어 서울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탈 서울적인 시도의 일환으로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작업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경기도 그리고 안양에서도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해시태그 토크
#페이퍼 애니메이션 #오일 파스텔 #오픈극장 미밈
: 오픈극장 '미밈'은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참여 작가들의 다큐멘터리, 미디어아트, 애니메이션, 실험영화 작품들을 상영하거나 이후 작업 활동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는 단체입니다.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도 함께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가 몸담은 이곳을 키워드 중 하나로 꼽겠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30년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종이모형 디자이너 장형순 작가가 대형 컨테이너 앞에서 자신이 제작한 종이작품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 30년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종이모형 디자이너 장형순 작가가 대형 컨테이너 앞에서 자신이 제작한 종이작품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장형순 종이모형 디자인 작가
종이·풀·가위만으로 만드는 모형들 … 이젠 그의 손에서 우리 문화재도 우뚝

종이와 풀 그리고 가위 한 자루만 쥐어지면 저 높은 남산타워도, 저기 먼 프랑스의 에펠탑도 눈 앞으로 가져온다. '나와라 가제트 팔' 종이 가제트는 당장이라도 악당 닥터 클로를 물리쳐줄 것만 같다. 종이에 마술을 부리는 종이 연금술사 장형순(49) 작가를 지난 25일 경기도 의왕의 한 컨테이너 창고에서 만났다.

"등반 이론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처음에는 저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를 올라갈 엄두 조차 안 나죠. 한번 올라가 보고 싶다라는 호기심으로 무작정 내디딘 걸음은 두렵기까지 해요. 그래도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언젠가 원하는 삶이 가까이 와 있지 않을까요?"

'OOO컨테이너 앞', 인터뷰 장소가 적힌 주소지를 보고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대개 작가와의 인터뷰라 하면 작업실을 소개하곤 하는데 장소가 낯설었다. 주소지에 적힌 장소로 들어서자 즐비한 대형 컨테이너들은 쏟아질 듯, 현장 분위기를 압도했다. 젠틀한 차림새가 인상적인 장형순 작가에게 명함을 건네자 "명함 종이 재질이 좋네요"라는 첫마디를 던진다. 종이 전문가다운 인사였다.

작품들을 소개하겠다며 문을 연 컨테이너 안에는 30년간 종이 모형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장 작가의 작품들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2000점이 넘는 그의 방대한 작품들을 보관하기엔 대형 컨테이너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종이모형 디자이너 장형순 작가는 종이 모형을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전개도'를 제작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저 텔레비전 만화 속 주인공을 가지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시작한 종이 모형 작업은 올해로 33년째 접어들었다.

"어느 집이든 종이랑 가위 하나씩은 있잖아요. 손쉬운 재료들로 당시 최고의 만화 캐릭터인 가제트, 모래요정 바람돌이, 스머프 등을 만든 것이 시초가 됐죠."

처음부터 그가 종이 모형 디자인을 업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었다. 건축 설계 일을 해오던 장 작가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계기로 숱한 건축 수상 이력이 빛을 발하던 건축 설계 일을 뒤로한 채 본격적인 종이 모형 작업에 뛰어 들었다.
"너무 무섭더라고요. 자칫 잘못된 설계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생각하니 해오던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어요."

장 작가는 꾸준한 전시 활동으로 종이 모형 디자인 분야의 입지를 다져갔다.
지난해 장 작가는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온 '위드 미드'가 돌처럼 굳어버린 로봇 '아루스'를 만나며 지난날의 추억들을 그린 어른들의 동화, '언덕위에 아루스'를 출간하고 '아루스' 캐릭터의 종이 모형 작품을 공개했다.

"2010년 당시 서울문화재단이 추진하던 사업 가운데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을 구상하기 위해 서울 문래동을 찾았죠. 지역주민들로부터 철공소가 밀집한 이 지역에 어린아이들이 하나 둘 떠나고 몇 명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문득 '남아 있는 아이들은 이제 누구랑 놀아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계기로 언덕 위에 아루스 이야기를 만들게 됐죠."

최근 그는 한국의 '전통' 또는 '문화재'를 소재로 한 작품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종이로 만든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나 '기마인물형토기', 성인만한 크기의 종이 모형 신윤복의 '전모를 쓴 여인' 등은 정교한 기술이 돋보이는 그의 대표 작품이다.

"어린이들이 책에서만 보던 우리 문화재를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지만 유리 저편에 있는 문화재를 만질 수 없고 그 유리마저도 손댈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문화유산의 위대함을 직접 만드는 과정을 통해 알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향후 전 지구촌의 어린이들이 우리 문화재를 만들어보는 그런 날이 오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해시태그 토크
#종이 #천천히 #허황된 꿈
: '종이'란 키워드는 설명할 것도 없이 저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고, '천천히'는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죠. 칼질을 안 다치고 잘하려면, 종이에 풀칠을 잘하려면 "천천히 하면 돼"라고 하는데 천천히 하면 안 될 것이 없어요. 또 주위에서 제가 '허황된 꿈'들을 꾸고 있다고 말하곤 해요. 하지만 이런 꿈을 꿀 수 있단 사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