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가로 … 추모길로 …
▲ 수원 인계동 나혜석 거리의 밤 풍경.
▲ 경기 성남시 분당구 '신해철 거리' 입구.
▲ 추모기념관으로 다시 꾸며진 신해철의 음악 작업 스튜디오 입구.
▲ 신해철의 곡 '그대에게' 가사가 거리의 작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
▲ 나혜석 동상 인근 쉼터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남녀.
'그곳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유명인의 삶과 그 생활 흔적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는 많은 이들이 한 번쯤 다녀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대구의 김광석 거리, 제주의 이중섭 거리 등이 활기를 띠고 있고, 심지어 목포 자유시장에는 가수 남진의 이름을 사용한 '목포 남진 야시장'도 자리 잡고 있다.

이같은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을 빌린 거리는 고인일 경우 추모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들의 예술세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면이 강하다.

최근에는 지역상권 및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특히 거리의 이름이 퇴색되지 않으면서도 활성화된 거리를 통해 다시 그 거리의 주인공을 돌아보는 계기로서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수원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을 붙드는 '만남의 거리'

수원 인계동의 나혜석 거리는 수원시민들과 직장인들에게는 퇴근 후 저녁시간 만남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식당에서 돼지갈비부터 양꼬치 등 다양한 분야(?)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리 중앙에서는 작은 무대에서 펼치는 음악인들의 버스킹도 즐길 수 있다.

물론 대부분 낮 시간에는 인적이 드물지만 밤이 되면 수원의 번화한 밤거리로 변신한다.

특히 수원시는 나혜석 거리를 음식문화촌 축제를 통해 지역상권을 살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말을 이용한 축제는 나혜석 거리 일대에서 펼쳐지며, 나혜석의 작품 전시와 함께 각종 공연과 무료시식 등이 이뤄지고 있다.

나혜석 거리는 음식문화축제를 통해 음식을 즐기면서 예술가 나혜석의 세계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민과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수원시 세류동에 거주하는 김민수(42)씨는 "저녁식사를 위해 자연스럽게 나혜석 거리에서 약속을 잡았다.

먹을거리도 풍성하고 활기가 있어서 자주 오는 편"이라며 "나혜석이라는 사람을 알지 못하는데 최근에 여성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돼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나혜석 의미 되새기는 거리로 거듭나야…'

나혜석 거리는 수원 태생인 최초의 한국여성 서양화가 정월 나혜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600m에 달하는 문화 거리다.

2006년 경기도가 지역일부를 음식문화 시범거리로 지정해 다양한 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다.

나혜석 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재현한 동상이 거리 시작과 끝에 각각 위치해 있다. 또 나혜석의 글과 그림 등이 새겨져 있는 조형물들도 비치돼 있다.

나혜석은 신여성이자 독립운동가, 문화번역가, 화가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나혜석은 한국여성 최초로 미술 개인전을 연 만큼 아직 보수적이었던 개화기 시대의 첫 신여성이라는 점에서 큰 상징성을 갖고 있다.

또 나혜석이 수원에서 출생한 부분과 인문학 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수원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한 곳을 그녀의 이름으로 채웠다는 부분이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나혜석 거리는 이런 의미보다 술집과 음식집으로 뒤덮인 음식거리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큰 상황이다.
유병욱 수원 경실련 사무국장은 "나혜석은 예술가이면서 최초의 신여성으로 잘 알려진 만큼 작품세계나 여성의 권리, 양성평등과 같은 것들이 거리에 느껴지도록 조성해야하지만 지금의 나혜석 거리는 이름만 남아있는 것 같다"면서 "거리를 조성하고 운영하면서 수원 출신의 인물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미를 어떻게 담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마왕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신해철 거리'

신해철 거리는 2014년 10월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이 곡 작업을 하던 수내동 작업실 주변에 지난 8일 문을 연 문화거리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발이봉로3번길 2의 160m 구간으로 이재명 성남시장의 SNS에 한 시민이 제안하면서 조성됐다.

거리는 신해철 거리를 알리는 입구를 따라 올라가면 바닥에 새겨 놓은 신해철의 어록과 여러 문화예술인들의 추모글을 볼 수 있다.

또 거리에는 신해철이 작사·작곡한 곡의 가사들이 놓여 있고, 거리 중앙에 이르면 신해철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다리를 꼬고 마이크를 들고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신해철 동상 옆에는 누군가 놓고간 꽃다발이 놓여 있다.
거리 한쪽에는 생전에 사용된 신해철의 작업실이 추모기념관으로 꾸며져 있어 그의 작업 공간과 각종 유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또 지하공간에서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 속 음성이 낮게 울려 퍼져 자연스럽게 신해철을 떠오릴 수도 있다.

작업실을 나서면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두 분의 자원봉사자들이 "다음에 또 오세요"라는 인사말을 들을 수 있다.

▲신해철 거리가 걸어갈 방향은?

신해철 거리는 주택가에 위치한 만큼 주민들의 불편을 의식해서인지 전반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다.

신해철이 조용한 분위기의 수내동을 작업실로 택한 것이 이유일 수도 있지만 현재는 추모하는 의미의 거리분위기가 강한 상태다.

따라서 거리 양옆으로도 나혜석 거리와 달리 음식점이나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선 활발한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성남시나 인근 상가 주인은 이제 막 조성된 신해철 거리를 더욱 특색 있게 꾸미고 싶은 마음이 크다.

신해철 거리 안에 위치한 호프집을 운영 중인 최혁(38)씨는 "저녁에는 거리가 어둡다는 주민들의 지적도 있지만 신해철 거리가 생겨서 주변이 확실하게 깨끗해졌다"면서 "포토존을 마련하거나 좀 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개발해 지금보다 조금 더 활발한 거리가 됐으면 한다. 날씨가 풀리면 가게 앞에서 버스킹을 하게끔 배려할 마음도 있다"고 밝혔다.

성남시 관계자는 "이곳이 주거지역이라서 신해철 거리의 규모가 작아졌다"라며 "올해 버스킹을 주말 오후시간으로 3~4회 운영할 계획이고 주민이 참여하는 공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활성화를 위해서는 거리개선사업을 통한 문화거리로 발전하는 여러 방안도 구상 중"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최현호 기자 vadas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