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나는 연극 한편을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 승려가 되고 그렇게 울어보기도 처음이다. 극단 십년후에서 만든 데이신따이, 즉 정신대 위안부 훈 할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연극은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부분으로 피해자의 증언을 통하지 않고는 묻혀 버릴지도 모르는 우리 여인들의 수난사를 담고 있다. 그 중에 멀리 캄보디아의 눈설고 낯선 땅까지 끌려가 일본군의 노리개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많은 여인들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눈 앞에서 가슴 저리며 연극을 통해 보는 순간 일본군들은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역사란 소중히 가꾸고 그릇된 지난 일들을 반성하고 후회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과거를 부정하고 왜곡하며 현실을 망각한 일본의 교과서 날조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하루라도 빨리 수정해서 다음 세대들이 타인에게 해를 입히고 누를 끼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제로타리 우호관계로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30대 초반의 일본 젊은이가 하는 말이 “아직도 일본을 미워하는 한국사람이 있습니까?”하고 나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일본의 교육이 어느 정도인지 내심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바르게 가르쳤더라면 선조가 한국에 너무도 많은 고통을 안겨주어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말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독일인처럼.
 부처님 재세시에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작은 나라에 큰 전쟁이 일어나 모두 도망을 가는데 적군이 쳐들어오는 길목을 청년이 막아서서 적장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이 연못에 들어가 얼굴을 밖에 내밀 때까지 이 경계를 넘지 말아주시길 바라오.” 장수는 가소롭기도 하고 가상하기도 해서 그러마 했다. 얼마가 지나도 청년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자 부하를 시켜 물 속으로 들어가게 하니 그 청년이 물 속 수초에 자신의 머리를 묶고 죽어 있었다. 적장은 청년의 충절을 높이 사 후퇴하여 되돌아가고, 그 나라 백성들은 목숨을 구했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희생을 요구하고 죽음과 아픔을 동반하는 것이다. 불교는 단 한번도 이 지구상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던 종교로 이웃과 더불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치고 있고, 또 그런 가르침 대로 사는 사람이 이 땅의 참주인이 되어야 한다. 동물적 근성에 의한 이기적 삶은 결국 자신을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한다. 그러한 나라의 문화는 어디에 가도 환영받을 수 없고 환영받아서도 안된다. 오늘 다시 한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심히 우려하고 하루빨리 수정하기를 요구하는 바이다. 그래야 지난 역사 속에서의 아픔을 끝내 버리지 못한 정신대 위안부 소녀 할머님들의 응어리를 풀고 다시쓰는 우리의 역사가 이웃과 함께하는 희망의 역사요, 기쁨의 역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정신대 위안부 소녀 할머니 모두에게 극락왕생의 문을 활짝 열어주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