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는 지금쯤 ?(11)

 『그때는 개성에 살고 있었는데, 시어른들이 뒤를 봐주었다.』

 『기럼 낙원군으로는 언제 이주하셨어요?』

 『돌아가신 너희 시어른의 유골이 혁명열사릉(북의 국립묘지)에 묻히면서부터 수령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들은 어더렇게 평양에서 계속 공부하면서 살 수 있었어요?』

 『돌아가신 너희 시어른 형제분들이 둘째와 셋째의 공부는 물론 양육까지도 애써 주셨다. 국가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그때는 공화국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다면서요?』

 『전후(戰後)복구 시기 끝나면서 부터 그중 살기 좋았다고 말들은 하더라마는 나는 시어른들 모시고 아이들 키우느라 세상일에는 눈 돌릴 시간이 없었다. 마을 려맹(여성동맹)에서 수령님 오신다고 나오라 해서 몇 번 박수치러 나간 적은 있어도.』

 『그때는 군이나 리마다 인민병원도 없을 때인데 아이들이 아프면 어떻게 하셨어요?』

 『마을마다 용한 동의사(한의사)들이 한두 사람씩 있었는데, 거기 가서 약초나 풀뿌리 같은 것을 구해와서 달여 먹이곤 했다. 그래두 안될 땐 거적에 싸서 애장터에 갖다 묻고 오구.』

 『…….』

 『요사이는 군마다 인민병원이 들어서 있고 리(里)에도 의사들이 배치돼 있어 그러는지 모르지만 보건 부문 일꾼들은 우리 공화국이 락원으로 변했다고 해요. 그렇지만 전체 인민들의 보건상태가 옛날보다 못해지고 봄만 되면 계절병 환자들이 늘어나서 우리 병원엔 의사들마다 걱정이 태산이에요. 의약품 보급상태가 너무 악화되고 있다구요. 어머님이야 제가 내과과장에게 부탁하면 어디서 약을 구해 와서라도 주사를 놔드리겠지만 페니실린이 벌써 몇 달째 보급되지 않아 갑자기 수술 환자가 들이닥치면 도 인민병원으로 보내버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야요.』

 『약을 구해다 빨리 고쳐 주어야지, 그렇게 도 병원까지 보내버리면 어카나?』

 『장마당에 가서 약을 사올 수도 없는 형편인데 어캅네까? 병원에 약은 없고.』

 『그럼 아범한테 말해 수령님께 신소라도 해야지?』

 『그런 일은 보건부문 일꾼들이 해야될 일이야요.』

 『아범은 뭐 한다고 맨 날 그렇게 바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