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반란을 평정한 초나라 장왕이 밤늦도록 향연을 베풀던 중, 회오리 바람이 불어와 연회장 안의 촛불을 모두 꺼 버렸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지자 술에 취한 한 신하가 왕이 가장 총애하는 후궁인 `허희""의 몸을 더듬으며 희롱하였다. `허희""는 자신을 농락한 한 신하의 갓끈을 당겨 증거물로 손에 넣은 후 왕에게 범인을 색출해 목을 베자고 간청했다.
 그러나 장왕은 연회장에 있는 신하들에게 `촛불을 켜지 말고 모두들 갓끈을 끊어 버린 채 흠뻑 취해 즐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절영""이란 갓끈을 끊어 버린다는 데서 유래한 단어이다.
 몇년 후 장왕은 정나라와의 전쟁에서 포로가 될 위기에 몰렸다. 그때 `당교""라는 장수가 `병사 수백명을 주면 탈출로를 내겠다""고 나섰다. 용맹스런 `당교""의 공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왕은 큰 상을 내리기로 했다. 하지만 `당교""는 끝내 이를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몇년 전, 향연장에서 이미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생명의 은혜보다 더 큰 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감사원이 의약분업 시행 및 의보재정 대책 수립시 준비 부족의 책임을 물어 복지부 공무원 7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원인과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도마위에 올려놓은 채 해당 공무원을 문책한다는 사실에 대해 공감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의약분업이 시작된 무더운 여름, 아픈 몸을 이끌고 약국과 병·의원을 전전하던 환자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며 최고 통치권자를 성토했지 복지부 직원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공무원 세계가 명령 하달식 조직이고 의약분업이 대통령 취임 100대 과제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전 오랫동안 보건소에 근무하던 동료 약사가 공직을 사퇴하고 약국을 열었다. 당시 보건소 직원들은 일요일도 없이 밤늦도록 격무에 시달렸다.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데려갈 시간이 없어 무능하다 못해 못된 엄마가 되어야 했다. 안쓰러운 모습을 보며 나는 그때까지 선망의 대상이었던 공무원이란 직업에 대해 새로운 잣대를 세워야 했다.
 국민들에게는 생면부지의 이웃에게조차 목숨을 던지는 살신성인을 칭송해 온 정부!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의약분업 정책을 시행하느라 고생한 동료 공무원들을 감싸주기는 커녕 사냥에 이용한 개를 잡아먹는 식의 `토사구팽""을 자행하는 정부를 보면 동료 약사의 공직 사퇴가 지극히 현명한 처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메마르고 살벌한 풍토에서 어떻게 전문가로서의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겠는가. 이래서 토사구팽하면 존경받지 못하는 정치인을 떠올리고 믿고 충성을 바칠 수 없는 현 정권에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닐까.
 과연 의료보험 재정 파탄 요인의 하나인 의료수가 인상이 복지부 자의에 의해서 였는가, 아니면 의사들의 파업으로 위급 환자들이 숨을 거둘 때마다 여론의 화살이 유권자들의 표를 떨어뜨리는 것을 막기 위한 정부의 긴급 조치였는가?
 사전에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다지만 대통령 취임 과제로 치적을 쌓겠다는 의약분업 정책을 두고 재를 뿌리는 식의 입바른 소리를 하고도 살아 남을 공무원이 있었을까?(실제로 김종대 전 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은 지난 99년, 의보통합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시정을 주장하다 파면된 바 있다.)
 만에 하나 의약분업이 성공한 정책이었어도 현 정권의 치적으로 돌리지 않고 복지부 공무원 7명의 공으로만 추켜세웠을까?
 눈속임으로 잘못을 감추는 것은 가랑잎으로 불씨를 덮는 꼴이요, 말장난으로 거짓을 둘러대는 것은 고기 잡는 그물로 알몸을 가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제라도 의약분업을 밀어붙인 정치인들은 `복지부 공무원들이 무슨 죄가 있소? 모두가 내 탓이오""라는 한마디와 함께 스스로 십자가를 지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