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베르그손~자끄 랑시에르' 대표 철학자 18명 생애·저작 통해 佛 철학 100년 역사 조망

새책 <현대프랑스 철학사>는 한국프랑스철학회가 엮은 이 책은 '프랑스 철학'의 의미를 묻는 데서 출발한다.

영미권이나 독일어권에 비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역사가 짧은 프랑스 철학이 오늘날 이론가들 사이에서, 또 저널리즘이나 사회비평 영역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참조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프랑스 철학에서 시대의 통찰을 구하려는 것일까? 프랑스라는 토양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기라도 한 걸까?

이 책은 그런 물음과 마주해 국내 소장학자들이 마련한 성실한 답변이다.

20세기 초 현대철학의 문을 연 앙리 베르그손부터 현재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 중 한명인 자끄 랑시에르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18명의 생애와 저작을 따라가며 프랑스 철학의 100년 역사를 조망한다.

철학자들은 저마다 프랑스라는 공간에서 전쟁과 혁명, 자본이 빚어낸 폭력의 시대를 살아갔다. 이들 삶의 궤적에서 움튼 사상과 개념은, 합리와 비합리를 오가며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답의 영역을 남겨두는 '인간'에 대한 반성과 이해의 노력을 보여준다.

오늘날 서양철학은 크게 3개의 권역, 영미권·독일어권·프랑스어권으로 나뉜다. 영미권 철학이 17세기 경험론과 18세기 계몽주의에 바탕을 두고 자연과학을 지식 모델로 하는 '분석' 전통을 보여준다면, 독일어권 철학은 19세기 관념론에 기초한 '종합' 기술을 자랑한다.

그에 비해 프랑스어권 철학은 20세기에 들어서야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가장 젊고 혈기왕성한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은 서구 문명에서 싹튼 온갖 과격한 사상을 종합한 거대한 용광로이며, 미래를 향해 끓어오르는 현재진행형의 철학이다.

이 책에서 프랑스 철학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꼽는 시기는 2차대전 전후, 그리고 1968년 학생혁명 전후다.

20세기 초 두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앙리 베르그손(1859~1941)은 인류를 전쟁 위기에 빠뜨린 근대과학 자체를 철학의 반성 대상으로 삼으며 철학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과학과 철학을 분리해서 보는 영미 전통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과학 혹은 과학사의 성취가 철학의 인식론에서 중요한 탐구대상이 되어왔다.

과학주의와 대결하며 베르그손이 꾀한 것은 '진정한 시간의 회복'이다. 그는 신체와 정신이 물질세계를 지각하는 상호작용을 통해 구체적인 시간을 '체험'하게 되는 과정에 주목하여, 과학적 합리주의로 접근할 수 없는 직관의 영역을 젖혀놓았다.

이러한 과학에 대한 비판적 사유는 '열린 정신'을 갖고 스스로 오류를 개선하는 현대과학을 이야기한 바슐라르(1884~1962), 의학에서 정상과 병리에 대한 통념을 뒤집으며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자 한 깡길렘(1904~95), 첨단정보기술사회에 맞닥뜨려 기술의 본성 및 인간과 기계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시몽동(1924~89) 등으로 계보를 이어간다.

한편 2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싸르트르(1905~80)와 메를로뽕띠(1908~61)가 주도한 현상학과 실존주의가 각광을 받았다. 변화는 그의 관심사가 추상적인 인간으로부터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인간, 사회·역사적 존재로서 인간, 즉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으로 옮아간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을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보인 가장 비인간적이고 추악한 얼굴을 상기하며 싸르트르는 왜 "타인은 나의 지옥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동시에, 무너져버린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려 안간힘을 썼다.

2차대전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세계는 냉전의 기운에 휩싸였다. 1968년 5월 발생한 프랑스 학생혁명은 직접적으로 미국의 베트남 침공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전쟁을 치르느라 수면 아래 있었을 뿐 시민사회에 뿌리 깊이 존재해온 계급 간 대립, 개인에 대한 억압을 향한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가 깔려 있었다.

바로 이 시기, 즉 2차대전과 68혁명 사이의 시기를 철학사에서 흔히 구조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구조주의 사상가들은 복잡다양한 사회 현상으로부터 그 현상을 빚어내는 보편법칙 내지는 구조를 밝히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철학 바깥에 있던 언어·사회·역사·예술 등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기존 철학보다 훨씬 더 정교한 분석을 제공했다.

철학이 위기에 빠지자 곧 철학을 다시 구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68혁명을 거쳐간 철학자들은 구조주의를 나름대로 계승하거나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푸꼬(1926~84), 들뢰즈(1925~95), 리오따르(1924~98), 데리다(1930~2004) 등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텍스트는 1970년대부터 영미권에 번역·소개되어 1980~90년대 전세계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붐을 일으켰다.

이렇듯 후기구조주의의 물결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프랑스 철학은 이제 과거 철학의 종언을 고하거나 이를 폐기하는 대신 오히려 철학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사유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고 하는 듯하다.

한국프랑스철학회 엮음, 창비, 512쪽, 2만5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