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치러진 역대 최대 규모의 다자정상회의인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이번 3차 서울회의를 통해 양 대륙간 정상협의체를 탄탄한 반석 위에 올라섰다는 평가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21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서울 아시아·유럽정상회의를 계기로 아시아와 유럽의 협력관계가 격상되고 탄탄하고 굳게 연결된 파트너의 관계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96년 태국 방콕과 98년 영국 런던의 두차례 회의에서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ASEM이 서울 3차회의를 계기로 향후 10년간의 활동방향과 중점취급 사업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함으로써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최근 남·북 및 북·미관계 진전 등 군사·안보상 중대한 지각변동이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ASEM이 개최된 것은 대회 규모를 뛰어넘는 상징적인 의미를 보탰다.

 이번 회의에서 아시아·유럽 26개국의 정상들은 통상 의장성명을 발표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선언」과 「아시아·유럽 협력체제 2000(AECF)」 등 2개의 별도 문건을 채택했다.

 「서울선언」은 영국과 독일 등 이번 회의에 참가한 유럽의 주요국가들이 북한과의 수교방침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남·북관계, 북·미관계에 이어 북한과 유럽의 관계개선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 회의는 ASEM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 지역의 정치적인 문제를 별도의 문서로 다루는 선례를 남겼고, 이는 2002년 덴마크 코펜하겐 회의부터 특정 주제를 선정해 구체적인 논의를 벌여나가기로 하는 제도화로 연결됐다.

 아울러 정치·안보분야에서 거둬들인 수확은 동티모르와 코소보 정세 등 두 대륙이 공유하고 있는 현안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협력의 기반을 마련한 것과 마약, 돈세탁, 테러리즘 등 범세계적인 사안에 대처하기로 합의한 점을 꼽을 수 있다.

 경제·재무분야에서 정상들은 다자간 무역체제를 강화, 교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한편 아시아지역에서 제2의 금융위기를 예방하고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에너지 수급 불안을 해소하는데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와함께 이번 회의는 향후 10년간 ASEM 활동의 청사진격인 「AECF 2000」를 채택, ASEM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했다.

 「AECF」는 앞으로 취급할 신규사업으로 한국측이 제안한 ▲트랜스 유라시아 초고속 통신망 사업 ▲정보격차(digital divide) 해소사업 ▲ASEM 장학사업 ▲돈세탁방지 사업 ▲환경장관회의 개최 ▲부패방지사업 ▲두 대륙간 이주관리 협력을 위한 장관회의 ▲에이즈(HIV/AIDS)에 관한 협력사업 등 16개 사업을 채택했다.

 또 ACEF는 신규회원국 가입과 관련, 점진직이고 단계적인 개방 등을 기준으로 제시함으로써 그간 가입을 희망해 온 호주, 뉴질랜드, 파키스탄, 인도는 물론 북한에 대한 문호 개방의 여지를 남기는 등 외연 확장에도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서울선언」 채택과정에서 유럽국가들이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언급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중국 등 아시아국가들은 북한을 겨냥한 문제 제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맞서 이견을 나타낸 것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겼다.

 결국 이번 서울 ASEM은 자칫 「정상들의 사교모임」으로 그칠 우려를 보여왔던 아시아와 유럽의 다자정상회의를 구체적인 의제를 다루는 협의기구로 「격상」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앞으로 두 대륙간 공통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국가적, 지역적 이기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새로운 숙제를 남긴 회의이기도 했다.

 김 대통령은 이와관련 『ASEM의 활동에 민간의 참여를 확대시킴으로써 각국 시민들이 ASEM의 성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왕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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