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C 생활양식 그대로 … 미국 역사 "한눈에"1. 옛질서를 지키는 아미쉬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되어 있다는 미국에 지금도 200여년 전의 생활양식을 고수하며 사는 백인사회가 있다면 믿겠는가?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전기와 전화를 사용하지 않으며 텔레비전·라디오까지 외면하면서 그들만이 자급자족을 하며 사는 집단농장을 찾았다. 1600년대부터 1700년대 사이에 유럽의 종교적 박해를 받던 루터교인이나 신교도들이 주로 독일에서 종교자유를 찾아 북미와 캐나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의 란카스터 카운티에 정착했는데 옛질서(old order)를 고수했던 경건파 무리를 아미쉬(the Amish)라 한다. 아미쉬는 대부분 펜실베이니아의 란카스터 카운티에 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4백만 신자가 있는데 그중 북미에만 32만이 살고 있다. 교육은 8학년까지며 복식교육을 한다. 아미쉬는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교인들은 전쟁에 나가는 것을 금하고 선서와 공직을 갖는 것을 금한다.

 그들은 주로 농사일을 하며 검소하고 단순하게 절제하는 생활을 요구한다. 아미쉬 성인 남자들은 수염을 기르고 창이 넓은 모자를 쓰며, 여인들은 간소하고 긴 드레스를 입고 보닛(bonnet)을 쓴다. 교인들은 2주에 한번씩 교인들의 가정을 차례로 돌아가며 예배를 드린다. 땅을 경작하며 재래식대로 유기농법을 쓴다. 그들은 규칙으로 전기와 전화사용을 금한다. 외부의 전기나 전화를 사용하면 자연히 외부와의 접촉을 하게 되며 따라서 자가 발전을 하여 세탁기나 전기 기자재를 직류로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들은 독일어로 된 성서를 읽기 때문에 자연히 독일어에 정통하다. 그리고 이들은 사진 촬영을 극구 거부한다.

 이들 무리들은 서로 협동심이 강하다. 예컨대, 그 지역사회의 어느 가정의 가장이 병에 들어 입원한다든지 하는 경우 그 가장이 해야할 일을 이웃들이 철저하게 도와주기 때문에 부양가족은 아무런 어려움을 받지 않는다. 그들의 전통음식은 사우어크라트와 포크(Sauerkraut and Pork), 커테이즈 치즈, 건조된 사과, 수제비 등이다. 2. 민속마을 윌리암스버그

 18세기 버지니아의 초기 수도였던 윌리암스버그(Williamsburg)는 가까이 있는 제임스타운과 요크타운과 더불어 역사적 트라이앵글이라 할 만큼 미국 초기의 역사적 산실을 이루고 있다.

 제임스타운은 1617년 이래로부터 최초의 영국의 이주민이 정착한 곳으로 아름다운 자연이 잘 보전되어 있으며, 재건된 요새와 첫 이주민을 실어 날랐던 세 개의 선박을 복제해 놓은 박물관이 있다. 요크타운은 1781년에 미국 독립전쟁의 결정적인 전투지였으며 요크타운 빅토리센터에 전쟁전시관도 볼 만하다.

 한편, 윌리암스버그는 1700년대의 모습으로 80여채의 집들이 복구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테마공원인 부쉬 가든, 주지사의 궁전, 관청, 재래시장과 정원 특히 흑인노예들을 경매했던 경매장, 대장간, 벽돌공장 등에서는 생생하게 주민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18세기의 복장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재판상황을 재연해 보이는 재판소(대법원), 그야말로 살아있는 자연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이주민이 최초로 이곳에 정착한 것은 모기도 적었을 뿐 아니라 농작물에 적당한 토지배수가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윌리암스버그 지방장관 구드윈(Goodwin)은 이곳을 옛모습으로 보존하려고 시도했으며 록펠러가 윌리암스버그 재단을 설립하고 재정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그래서 80여개의 초기 건물들이 복구되었고, 50여개의 건축물이 복원되었다. 현대생활의 복잡한 틀속에서 잠시 벗어나 맑은 공기와 수려한 자연에 파묻혀 옛 18세기의 문화에 젖는 것도 현대인에게는 필요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3. 이상향 청학동 우리나라도 세속과 절연해서 사는 종교집단이 있다. 옛날, 임방이란 정승이 정계를 떠나 있을 때 그 하인에게 지리산에 심부름을 보냈다. 그는 고생 끝에 겨우 그곳을 찾아 신선을 만날 수 있었다. 신선은 이 심부름꾼에게 답신을 써 주었다. 그곳은 별천지처럼 청아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뒤돌아보니 길은 없어지고 엉겅퀴만 무성하다. 심부름꾼은 집에 왔지만 두번 다시 그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훗날 심부름꾼이 가서 신선을 만났다는 그곳을 청학동이라고 한다. 청학동은 그처럼 속세와는 별개의 세계, 병이 없고 먹을 것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이상향이다. 사람들은 신선이 산다는 이상향을 동경했다.

 일심교(갱정유도)라고 자칭하는 종교집단이 있다. 전남에서 발생했다는 이 집단은 세속과 절연해서 한복을 입고 머리를 깎지 않으며 학교를 보내지 않고 저들 서당에 보낸다. 지금은 이들 일부가 청학동이라 불리는 곳에 들어가 사당을 짓고 농사를 하며 집단으로 살고 있다.

 최근에는 세속과 왕래도 하며 일반 학교에도 희망하면 보낸다고 한다.

 한편 미국의 윌리암스버그를 비롯해 일본에도 메이지무라(明治村)가 있고, 북구 핀란드에도 옛마을이 복원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마을이 없다.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은 개인이 경영하는 소규모 민속마을 관광지이다.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외국인들이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산 박물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