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차인(茶人)으로 살며 우리나라 차역사 큰 획 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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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차문화의 거목, 이귀례 선생이 87세를 일기로 26일 저녁 타계했다.

문화계의 큰별이자 여걸이었던 이귀례 선생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까지 인천아시안게임 등에서 차문화행사를 펼치는 등 문화사업에 힘쓰던 중 쓰러져 투병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며 결국 26일 저녁 영면했다. 이 선생은 평생 우리나라 전통 차문화의 보급과 발굴, 정립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온 대한민국 차문화를 개척한 1세대 차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70년대 차인들과 함께 종로를 행진하며 우리 차의 우수성과 효능을 널리 알리고자 했던 한국 1세대 차인이다. 

1929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이귀례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동학운동을 했던 할아버지로부터 행다법을 보고 익히며 성장했다. 1979년 '한국차인회' 창립준비위원으로 본격적인 한국 차문화 보급 대열에 참가하기 시작한 이래, 1984년 차문화동호회인 '인설회'를 구성하고 '다신계'부회장(1988), '한국차문화협회'회장(1999∼2015)을 역임한 것도 이같은 성장배경에서였다.

이 선생의 활동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았다. 1994년부터 인도·스리랑카·미국·독일·중국·대만 등 해외에 나가 규방다례를 시연하고 전통 궁중의상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 같은 선생의 왕성한 활동을 바탕으로 한국차문화협회는 전국에서 300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명실상부한 차문화 관련 최대 단체로 성장했다. 한국차문화협회 최대 행사인 '전국차인큰잔치'는 해외에서도 참가를 희망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으며 그 중심에 이귀례 선생이 있었다. 지난해 인천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 문화행사에는 전국의 차인 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일본의 차인들이 대거 참가해 대회를 빛내기도 하였다.   

선생의 활동 범위는 세계를 지향하고 전국을 아우르는 것이었으나 지역을 사랑하는 활동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2002년 무형문화재 규방다례 보유자로 지정받은 선생은 전국인설차문화전과 전국차인큰잔치라는 행사를 인천에서 개최하며, 인천 문화를 다양화하는데 노력하였다. 인천이 고려시대부터 차문화의 고장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셨던 선생은 대문호이자 차인인 백운 이규보 선생의 선양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선생의 인천 사랑은 2007년 인천광역시박물관협의회와 인천시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을 맡으며 더욱 확대됐다. 9개관을 회원으로 출범한 인천시박물관협회는 현재 26개관이 활동하는 단체로 성장했고, 한국박물관협회가 지역협의회의 모델로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됐었다. 4년 연속 복권기금을 획득해 인천시박물관축제를 개최했던 저력은 전국 박물관들의 부러움을 넘어 질시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인천을 소재지로 활동하는 33개 무형문화재 단체들의 열악한 전수공간을 안타깝게 여긴 선생은 지난해 전국 최초로 인천에 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을 준공하는 결실을 맺어 전통문화의 계승, 보존에도 열의를 보이셨다. 

한국 차문화의 역사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던 선생은 <한국의 차문화 - 우리 차의 역사와 정신 그리고 규방다례>(2002)를 손수 집필했으며, 2010년부터 5년간 사재를 털어 연구를 진행했던 <조선시대 여성의 차문화와 규방다례>는 2014년 간행과 동시에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됨으로써 한국 차문화사는 물론 여성생활사연구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선생은 최근까지 (사)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 가천박물관 관장, 규방다례보존회 이사장, (사)인천광역시박물관협의회 이사장, (사)재인천광역시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 등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제2회 초의문화상(1993), 명예차문화대상(2002), 인천시 교육대상(2002)을 비롯해 '문화의 날'(2000)에 국내 차인으로서는 최초로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제35대 신사임당으로 추대(2003)됐다. 자랑스런박물관인상(2013)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항상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라'며 언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왔다. 이귀례 선생은 평소 "나는 푼수인가봐 돈도 안되고 돈만 들어가는 일을 평생하고 있으니 말이야"라는 말을 했다. 이귀례 선생은 진정한 차인이고 인천의 큰 어른이자 진정한 문화인이었다. 유족으로는 아들 최승헌씨와 딸 최소연, 최소리, 최미리씨가 있다. 빈소는 길병원 5층 특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월2일 오전 8시이며 분당 메모리얼파크이다.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