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지난 2006년 1월 19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양국 외교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수용' 등 8개항에 걸친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이후 국내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에서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한반도 안보공백은 물론 주한미군의 성격변화에 따른 한국의 지역분쟁 연루가능성이 제기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상호방위조약 개정, 방위비 분담금, 용산기지 이전 등 다양한 외교·군사적 현안들이 봇물처럼 제기되기 시작했다. 관련부처인 NSC와 외교부, 국방부 간에는 연일 논쟁이 이어졌고, 급기야 외교안보라인의 '자주파vs.동맹파' 논란이 붉어지기도 했다.
9.11 이후 변화된 안보정세에 맞춰 미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군사변환에 따라 한국에서의 전작권은 전적으로 한국정부에 귀속되고 미군은 온전하게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세계전략을 완전하게 구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나가는 그림이 그려졌다. 부시 행정부 시절 발표된 '국방검토보고서(QDR)'에서도 주된 안보위협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테러리즘'과 '북핵'이었다.
결국 2006년 10월20일 또 다시 워싱턴DC에서 개최된 제38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양국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2012년 3월15 보다 늦지 않은 시기에 전작권 전환을 완료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힘으로써 논란을 일단락시키는 듯 했다. 하지만 2010년 6월27 양국 대통령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전환시기를 2015년으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고, 2014년10월23 워싱턴DC에서 열린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양국 국방장관은 결국 '조건에 기초한 전환'을 발표함으로써 전작권 전환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안보적 측면에서 본다면, 한반도 안보상황의 변화나 우리군의 독자적인 전력증강 등이 총체적으로 고려돼 전환의 시기나 방법이 결정되는 것이 지극히 바람직할 것이며, 주권적 측면에서는 응당 자국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 전적으로 당연할 것이다. 또 동맹의 측면에서는 그것이 동맹의 근간인 연합방위체제의 근본적 변화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양국이 어떠한 안보이익을 공유하고 교환할 수 있는가에 따라 미래 동맹관계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중요한 외교적 사안이기도 하다.
전작권 전환이 갖는 기본적인 함의가 말 그대로 한반도 방위의 일차적인 책임이 한국에 부여된다는 점에서 보완전력의 제공이나 방위비 분담 같은 문제 등도 여전히 중요한 현안이기는 하지만, 한반도 주변 4강의 역학관계나 한국전쟁 이후 북·미간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역내 대결적 군비경쟁이나 군사적 패권경쟁을 지양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계기로 국면을 전환할 수 있다는 정치적 의미 또한 쉽게 간과할 수 없다.
미래 안보환경에서는 주한미군에 의존한 대북전력 우위의 확보만이 한반도의 모든 안보위협을 해소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변화하고 있는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양국이 공유하는 안보위협이 북한에 한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냉전기의 한미동맹이 막강한 대북억제력을 근간으로 한반도의 평화유지(peace keeping)에 기여해 왔다고 한다면, 탈냉전기의 미래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평화정착(peace making)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지향해야 할 것이다. 전작권 전환은 그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