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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과 철학, 경제학과 사회학, 심지어는 법학과 신학,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넘나들며, 개념적으로나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꼬박 한 세기가 다 되도록 이들 학문에서 여전히 유용하게 통용되고 있는 기본틀을 제공하고 있는 근대 사회과학의 개념규정자 막스 베버(Max Weber). 자신의 생애 마지막 강연주제로 삼았던 '소명으로서의 정치(politics as a vocation)'에서 그는 서로 대립하는 윤리의 두가지 준칙을 각각 '심정윤리(Gesinnungsethik)'와 '책임윤리(Verantwortungsethik)'로 정식화하면서, 정책결정자로서 정치가의 신념(conviction)과 책임(responsibility)이 상호 지양된 정치적 소명의식을 핵심덕목으로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심정윤리적인 행위준칙은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를 유발하는 선(善)의 의지나 도덕적 신념 또는 확신에 상대적인 우위를 두는 반면, 책임윤리적인 행위준칙은 행위로부터 예견되는 결과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 더 무게를 두게 되며, 이념적으로 이 두가지 윤리적 준칙은 상호 충돌하기 보다 내적으로 지양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태의 모든 국면에서 이같은 내적 지양이 가능하지 않다면 특히 정책결정자에게 있어서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책임윤리라는 점을 그는 말하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도 있지만, 정치적 의사결정과 정책의 집행 간의 벌어진 틈새에 자리하고 있는 미묘한 간극과 괴리가 커지는 상황이라면, 심정윤리와 책임윤리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념적인 내적 지양은 고사하고 그것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경우가 다분한 것이 현실이다.

우스갯소리로, 인구학회 한 세미나에서 인구밀도상 한반도에 적정한 인구규모는 대략 3000만명 수준이라는 한 연구자의 발표에 대해 돌아온 대답은 "그래서 어쩌라고?"였다는 얘기가 있다.
가뜩이나 다수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에 기반해야 할 정책결정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개의 경우 심정윤리적 판단에 근거하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정책적으로 모두 수용해내기 어려운 이유다. 다양한 사회적 요구들은 당연히 정책의 디테일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하지만, 또 현실적으로 그것이 "so how?"나 "so what?"으로 귀결되곤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때 우리사회에서 커다란 정책적 이슈로 제기되었던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FTA' 같은 사안들의 경우에 그 정책결정과정에서 심정윤리와 책임윤리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평화'와 '복지', '생태', '환경' 같은 가치들은 분명 '안보'나 '성장', '개발', '발전' 같은 개념들 보다 보편적인 도덕성을 담보하는 개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수도권매립지' 같은 문제들은 관련 지자체간 지역이기주의적 측면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일단 논외로 한다면, 대안적인 측면에서 책임윤리적인 현실적 판단을 놓고 심도깊은 사회적 토론을 통해 결론에 도달해야 할 시점에 이르고 있다. 주장과 요구가 아닌 대안을 만들어가는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