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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식자(識者)들에겐 우환(憂患)이 있다. '제가 아는 게 곧 우주'라는 착각 속에 사는 것이다. 개인의 지식과 견문이 영원한 한계를 지닌다는 것을 대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힘을 모아 학회라는 이름의 지적 조합(知的組合)을 만든다. ▶자파의 사회적 이득 혹은 기득권 확보를 위해서는 윤리적 가치를 의도적으로 잊는 것도 예사다. '지성'의 집단인 대학에서 총장 선출을 위해 교수들이 이합집산과 암투, 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그 과정에 학연(學緣)ㆍ지연(地緣)이 주 연결고리로 작용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일반적으로 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학연·지연이 사회 전반을 긴밀하게 움직여 가는 주요 동력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판이어서, 혈연(血緣)은 오히려 인간 의지를 넘어서는 DNA적 관계라는 점에서 용인해 주는 경향이 있다. 법에서조차 피붙이 간의 일에는 관용을 베푼다. ▶최근 전 국민의 주시리에 희대의 도주극을 벌이고 있는 유병언 씨 사건도 그 같은 사정을 말해 준다. 유병언 씨의 친인척들이 그의 도주에 협조하거나 은닉해 주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법이 지니고 있는 상반된 온정주의의 한 모습이다. ▶어쨌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학연·지연·혈연에서 '별에서 온 그대'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지난주 인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지방선거 당선자 축하회'에서 유정복 시장 당선자가 지역사회에 던진 화두에 눈길이 모아졌다. ▶유 당선자는 "오로지 300만 시민을 섬기며" 학연·지연에 의한 "소수의 특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시정, 사심과 관행, 타성에 매몰되지 않는 시정을 펼치겠다"고 했다. 그에 미리 화답이라도 하듯, 당선자의 중씨(仲氏)인 유수복 대표이사는 회사를 부천으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옥곤금우(玉昆金友)가 학·지·혈연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풍 조성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역대 여·야 시 정부에 빌붙어 살아온 지역 세력들의 건재함을 보면서, 유정복 당선자의 3연(三緣) 극복 의지를 재삼, 재사 믿고 싶은 심정이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