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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로봇에 관한 추억 하나. 6·25전쟁 직후 어느 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눈이 흩날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우리들은 미군 흑인병사가 나눠주는 선물 봉지를 받아들었다. 그 안에는 줄넘기, 사탕, 호루라기, 빨간 공, 장난감 자동차, 잠자리 표 연필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 중 제일 인기가 있던 것은 양철 로봇이었다. 태엽을 감으면 손을 내저으며 앞으로 나가는 것이 신기했다. 머리에 달린 작고 동그란 안테나는 지금도 기억나는데, 그것이 '잠자리 표 연필'과 함께 일본제였다는 것은 후에 알았다. 그 후의 로봇도 일본제 위주였다. ▶로봇 SF의 아버지 '아이작 아시모프' 이후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희로애락을 느낄 줄 아는 존재를 창조하는 인간의 오랜 꿈"을 실현한 것은 만화가 데츠카 오사무였다. 영화 '우주 소년 아톰'은 지구의 평화를 위해 초능력을 구사하는 로봇의 활약상을 그렸다. ▶한국판 로봇이 등장한 것은 1976년 김청기 감독이 만든 '로보트 태권브이'에서였다. '태권브이'는 영화 주인공이 탑승·조종하는 로봇의 이름으로 중·장년층의 추억 속에 아로새겨진 과학적 상상물이었으나 일본의 '마징가 Z'를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사람처럼 2족 보행하는 로봇 '아시모'를 최초로 개발한 것은 일본의 혼다 사였다. 우리나라 카이스트가 만든 '휴보'도 있었으나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에 최근 소프트뱅크 사의 손정의 회장이 감정인식 로봇 '페퍼'를 개발해 인류의 꿈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되었다. ▶인천에서도 '로봇'을 미래산업의 큰 줄기로 보아 2009년 '인천로봇랜드'를 출범시켰지만, 지난 5년간 지지부진했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었다. 그러나 본보 이주영 기자의 보도는 "특수법인 투자자들이 오히려 사업추진을 방해하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5년 동안 손 놓아두었다가 급작스레 836억 원에 달하는 관급공사 계약을 의결했다는 것도 의문이다. 무언가 앞뒤가 안맞는 결정으로 보인다. 다양한 최첨단 로봇을 탄생시켜야 할 '랜드'가 업자들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