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시인
얼마 전 배다리 헌책방을 찾았다.
발간된 지 몇 달 전 책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한 권의 책을 사 숨가쁘게 읽어버렸다. '북 로우의 도둑들'(맥테이트 지음, 노상배 옮김, 책 세상, 372쪽)이란 책이다.
뉴욕의 맨허튼 4번가 여섯 블록에 있는 헌책방 거리에서 미국의 대공황기 책과 관련된 범죄를 다룬 이야기다.

대공황을 피해갈 수 없는 공공도서관의 책을 상대로 한 절도. 그리고 출판업의 불황으로 위축된 책 기근 현상에서 비롯된 현대판 지적 도둑들의 양심의 가책. 헌책방 주인들이 적어주는 목록을 들고 싹쓸이를 하는 데서 찾아 볼 파렴치한 범죄지만,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정겨운(?) 시선마저 드는 책이 아닌가 한다.
책을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고, 설령 빌렸더라면 주지 말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도서관의 책을 면도칼로 도림질하는 우리의 현실은 그 도둑들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비록 장물이지만 온전한 책으로 거래하는 그들과 사람을 만드는 책에 칼질을 해대는 우리는 책의 살인자(?)라고 해야 할까.
무언가 모르게 허겁지겁 달려 온 것 같은 인천을 생각한다. 다가올 아시아경기대회와 장애인경기대회를 치르고 나면 곧 '유네스코, 책의 수도 인천'이 코 앞이다.

책은 서가에 장식품으로서 물건이 아니다. 읽혀야 할 책이고,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 '책의 수도'에 걸맞지 않나 한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고 하는 출판업계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유수한 출판사가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최대서점이 매해 3.7%씩 매출감소라는 통계를 보면 소규모 출판사나 작은 서점들은 문을 닫기 바쁜 실정이다. 결론은 "우리 국민이 책을 너무 안 읽는다"는 것이다.
본래 책은 잘 팔리는 상품이었을까? 살 돈이 필요하고 읽을 시간과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지력(智力)을 요하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에게만 특별한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주중 11시간의 독서시간을 할애한 1위의 인도, 4시간여의 일본, 영국은 5시간, 그리고 미국과 독일은 5시간42분으로 22위, 한국은 3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으로 30개국 중 최하위였다.
국민의 독서율은 한 나라의 문화수준의 '바로미터'라고 하지만, 출판사가 소비자(독서자)를 질타하는 경우는 책 뿐이고 우리나라뿐인 것 같다.

병인양요(1866년) 당시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 군대가 가난한 집에도 책이 있는 걸 보고 감탄했다는 말이 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부모가 자식이 책을 산다면 대동변을 내서라도 사주는 책과 글을 높이 사는 유전자가 우리에겐 있다.
미국의 시카고대학은 석유재벌 록펠러가 세운 대학으로 허친스라는 총장이 '고전 100권 읽기'를 주장·강행했다. 50권을 넘기며 질문과 토론으로 변하기 시작해 고전 100권을 지르밟으며, 자신감으로 대학의 개혁은 물론 취임 후 85년이 지난 현재까지 8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책 읽기는 머릿속에 창의가 넘치는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대박만을 노리는 출판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잠복해 있는 책 읽는 DNA를 깨울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교훈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