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상인천여중·인화여중 전국 호령
"서울 팀을 이기기 위해서는 5점을 먼저 줬다는 마음으로 시합을 해야 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이호연(39·서흥초-상인천여중-인천여고), 홍정호(35·구월초-상인천여중-인천여고), 김랑(36·구월초-상인천여중-인천여고), 조은희(35·서흥초-상인천여중-인천여고)를 길러낸 이승재(52·현 인천도시개발공사감독) 당시 상인천중 감독은 "0대5의 점수 차를 이겨내기 위해서 선수들은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야 했다"고 말했다.

이승재감독은 "1980년대 인천 팀이 서울팀을 이긴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심판들도 아예 인식이 그랬다"며 "인천 팀은 서울팀과 시합하면 심판 2명을 포함해 7대9의 싸움을 벌여야했고 이는 점수로 5점을 먼저주고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감독은 "이호연, 홍정호, 조은희 등이 중학생시절에는 4명이 한조가 돼 인천도원체육관에 있는 골대를 들고 체육관 주변 고개를 하루에도 수차례 넘어오는 훈련을 벌였다"고 말했다.

힘겨운 과정을 이겨낸 선수들은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상인천여중은 지난 1982년 5월 전국종별선수권대회에서 마침내 팀창단후 첫 우승을 맛봤다.

상인천여중은 이 우승을 시작으로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달리며 한국핸드볼을 대표하는 걸출한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상인천여중의 맞수 인화여중도 두 팀이 오가며 인천대표팀을 번갈아 차지했다. 두 팀의 대결 승자가 곧 전국대회 우승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인천핸드볼은 정상을 달렸다. 지난 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대한핸드볼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조은희는 "당시 인천 핸드볼 지도자들은 핸드볼과 결혼한 사람들이었다"며 지도자들의 열성에 대해 말했다. 인천의 수많은 핸드볼지도자들은 인천유일의 훈련장이었던 시립도원체육관에서 선수들과 같이 숙식을 해가며 지도를 했고 이런 열정이 오늘날 인천핸드볼의 신화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비록 인천은 아니지만 의정부여중을 졸업을 남은영(40·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씨도 "핸드볼하면 인천이 떠오를 정도로 인천의 학교 팀들은 전국 최강이었고 지도자들의 열성 또한 대단했었다"고 말했다.

차재경(40·바로셀로나올림픽 금메달)씨도 "당시 모든 핸드볼 선수들의 선망이 인천시청 김옥화선수였는데 바로 지척에서 볼수 있는 인천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난 것은 당연했다"고 말했다.

/글·사진=백범진기자 bjpaik@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