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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날도 땀 송골송골 어머니의 얼큰한 손맛
추운날도 땀 송골송골 어머니의 얼큰한 손맛
  • 승인 2010.02.01 00:00
  • 수정 2010.01.31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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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늙은 호박 우린 추어탕 국물 일품

가을고추 송송 … 수제비 넣어 씹는 재미도





매서웠던 추위도 지난 듯하고, 나른~하게 맥이 풀리는 것 같다. 입춘(立春·4일)도 사흘 앞으로 다가오니 겨우 내 웅크려 찌뿌드했던 몸도 한껏 기지개를 켜고 싶어지는 때.'뭔가 정신 확 나는 일 좀 없을까', '뭐 입맛 당기는 먹을거리 없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고추장 추어탕. 따뜻한 바닥에 앉아 쭉 들이켜는 뜨끈하고 진~한 국물은 무력했던 우리 몸과 정신에 기운이 확 나게 해 줄 테니. 가보자, 남구 학익동에 있는 살구나무집으로!

보양식으로 알려진, 미꾸라지로 끓인 얼큰~한 국이 추어탕(鰍魚湯)이다.


보통 남원 추어탕이 유명하지만 살구나무집 추어탕은 경기도 이천 추어탕이다.


굳이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집 주인장 이수자(65)씨가 수십년 타지 생활에도 잊을 수 없었던 소싯적 고향의 맛이 바로 이집 탕 국물맛이다.


여름에 큰 비가 왔을 때면 온동네 사람들이 논에 나갔고, 그렇게 잡아온 미꾸라지들을 장작불 위에 걸어 놓은 커다란 가마솥에 넣어 다같이 끓여먹었던 그 맛을 이씨는 살구나무집 상에 올린다.


특이한 점은 된장과 고춧가루, 무청이나 배추 등으로 국물을 내는 일반 추어탕하고 다르게 이집 탕은 고추장하고 늙은 호박으로 맛을 낸다는 거다.


그래선지 구수하고 진한 느낌의 일반 추어탕과 조금 달리, 살구나무집 추어탕은 약간 달기도 하면서 짭짤하기도 한 맛을 동시에 볼 수 있다.


탕 국물을 내기 위해 메주가루를 많이 넣고 약간 짭짤하게 만들어 숙성시킨 고추장 맛과, 늙은 호박의 달달하고 진득한 맛이 하나의 국물로 어우러지면서 만들어진 특별한 맛인 셈이다.


이씨는 특히 늙은 호박으로 낸 국물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하다.


"옛날 어른들은 거기 미꾸라지를 넣고 중탕으로 끓인 뒤 짜서 드시면서 '약'이라고 했을 정도"라는 말로 늙은 호박과 미꾸라지는 찰떡 궁합이라는 것.


국물 맛은 또 어찌 생각하면 떡볶이 맛과도 약간 비슷한데, 이 집은 수제비를 떼 탕에 넣어주기 때문에 또 하나의 먹는 재미를 즐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나 아이들이라도 한번 맛을 보면 꼭 가게 명함을 챙겨 간단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칼칼한 느낌도 적당히 살아 있다는 점이다.



 



 

텁텁함 없이 산뜻한 국물은 여러가지 채소를 넣고 조미료나 들깨가루가 한움큼씩 들어가기 마련인 보통 추어탕하고는 달리 채소는 늙은 호박과 감자, 대파 정도를 빼고는 안넣고 조미료는 아예 쓰지 않는 덕이다.


칼칼한 맛은 가을에 나온 매운 고추를 곱게 썰어 냉동실 안에 보관했다가 쓰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콕 집어 '가을'고추라고 하는 말에 물었더니 "날이 선선해지는 가을에는 무농약의 좋은 채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단출하지만 정갈하고 조금은 싱거운 듯하면서도 씹는 식감이 살아 있는 이 집 밑반찬들 맛은 이런 주인장의 꼼꼼함과 마음씀씀이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다.


봄·가을로 나는 나물들은 딱 제철일 때나 늦가을 나물들을 사다가 곱게 삶았다 말려 쓰고, 배추김치도 벌레 먹은 게 없고 약도 뿌려진 적 없을 가을배추로 한꺼번에 담궈 필요할 때마다 꺼내 내놓는다고.


추어탕과 함께 살구나무집의 대표 메뉴인 돼지김치찌개에 들어가는 묵은지도 마찬가지라, 지금 맛 볼 찌개용 묵은지는 재작년에 담근 김장김치가 들어간다.


역시 이천식 김친데, 다시마와 북어머리를 달인 물로 젓국을 대신하고 고춧가루는 많이 쓰지 않기 때문에 약간 싱거운 듯하지만 시원하고 식감이 좋다.


이 묵은지랑 기름기가 너무 많지 않은 국산 돼지 뒷다릿살로 국물을 내는데, 대포 좋아하는 주당들이라면 저녁 안주로도 다음날 점심 때 해장감으로도 더할나위 없을 듯.


안줏감으로는 튀김도 있다.


팔팔 끓는 기름에서 한번 확 끓였다가 약불로 노르끄레하게 튀겨 내오는데, 눅진한 느낌이 전혀 없이 아삭바삭한 맛이 일품이다.


또 하나, 이 집은 밥도 바로 주지 않는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그제서야 작은 가마솥을 앉히고 쌀을 씻어 짓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해 둬야 쫓기지 않고 먹을 수 있으니 잊지 말 것.


다 먹고 나서 솥 누룽지로 끓인 눌은밥과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면 세상 부러울 일 없다.


032-868-4004.


/글=송영휘기자·사진=박영권기자 blog.itimes.co.kr/ywsong2002




깐깐한 재료선정 정성 한움큼

직접 담근 고추장이 일등공신

"추어탕은 사시사철 좋은 음식"

인터뷰 / 이수자 살구나무집 대표

"인천 법조인치고 우리집 국물 맛 안본 사람 없을걸요."
살구나무집 주인 이수자(65)씨가 이렇게 자신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제철 나물을 말려 쓰고, 벌레 없는 때를 골라 재료를 사는 수고와 번거로움을 마다않는 이씨기에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신중한 법조인들이라도 한번 길든 맛과 정성을 잊을 수 없었을 듯.
주안동 석바위에 있던 인천지방법원과 검찰청이 학익동으로 옮겨갔는데도 잊지 않고 먼길을 돌아 굳이 찾아온 친숙한 얼굴들을 위해 결국 이씨도 지금의 학익동으로 가게를 옮겼단다.
손님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통했던지, 그랬더니 인근의 소방방재청과 보호관찰소, 구치소, 동사무소, 인하대와 인하공업전문대학 등에서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와 식당 운영도 큰 어려움 없이 안정궤도에 오른 상태다.
주인장이 꼽은 살구나무집 맛의 일등공신이 궁금했다.
대답은 "고추장".
영흥도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한 아주머니가 매번 대어 주는 태양초로 고춧가루를 쓰고 고추장도 만든다는 이씨는 고추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가게 앞 장독대에 있는 7~8개의 독들의 장 맛을 이씨는 속속들이 알고 있다.
기자에게 고추장을 찍어주면서 "이건 저거보다 조금 짤 걸", "요게 저거보다 달달할거야" 하는 이씨 얘기는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단 건 고추 찍어먹고 김치찌개 국물 내는 장이고, 짭짤한 건 추어탕 국물용으로 만든 거라고.
요즘이 추어탕 먹기에 어떤 때냐고 물으니 "추어탕은 특별히 때가 없는 사시사철 좋은 음식"이라면서도 은근히 한 마디를 덧붙인다.
"지금 때가 얘들이 산란을 할 때라 알 밴 놈들이 많아, 그래서 옛부터 땅이 녹기 시작할 때면 논에 미꾸라지 잡는 애들이 많았던게지."
/송영휘기자 (블로그)ywsong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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