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놀 줄 아는 '낭만시객'
1집 '핏줄'선 헤어진 가족의 그리움 표현

2집 '고의적 구경'선 자아 찾는 여정담아

"시 말고 자랑삼아 내놓을 놀이가 없어요"


"1집은 찌라시 개념이구요, 이번 시집은 본격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 고철(사진)씨가 두 번째 시집 '고의적 구경'을 펴 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그늘진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어린아이 사진(고철의 어린시절 사진이다)이 그려진 1집과 달리 2집은 세련된 모자이크로 무늬져 있다. 그가 '찌라시' 개념이라고 말한 1집이 '가족'을 찾기 위해서였다면 2집은 '자아'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고철은 생계를 위해 아파트외벽 페인트공으로 일한다. 2집의 시들은 그렇게 높고도 위태로운 허공에서 외롭게 쓰여졌다. 차가운 아파트벽을 마주보며 그는 가족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새겼다.
'겨울, 민박집에 누워 있다 사나흘 누워 있다 /해도 저만치서 꽁꽁 누워 있다 /반쯤 먹다 남은 커피가 얼어 있다 /그림자 말고는 다 얼어 있어야 사는 곳…중략…봄을 탐하는 건 사치다 /달만 살이 쪄야 하는 고요, /여기 설악에선 그 고요도 얼어야 살아낸다.'(시 '달만 살이 찐다' 중)

"시 말고는 내가 자랑삼아 내 놓을 좋은 놀이가 없습니다. 그 놀이가 없었다면 내 팔둑에는 십이지상 같은 세월 좋은 지문과 문신으로 가득했을 겁니다."

실제 그를 마주하면 시인이라기 보다는 '어깨'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짧게 깍은 머리에 다부진 체격이 그를 시인으로 생각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리움에 젖은 그의 깊은 눈동자와 육화한 글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2006년 첫 번째 시집 '핏줄'을 펴낸 것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가난이 불편했습니다. 고아라는 사실도 말하기 싫었구요. 첫 번째 시집을 펴내며 완전하게 저를 드러냈지요."

'핏줄'이라는 제목의 1집의 첫장을 넘기면 그의 어린 시절 비망록이 펼쳐진다.

'이름 김금철/근철(추정), 나이 1962년 1월25일 생(추정/시설기록), 고향 강원도 철원, 찾는 사람 가족, 헤어지게 된 동기 : 어릴적 살던 곳은 강원도 철원으로 생각되며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으며 어머니는 하숙집을 경영했습니다…중략…어머니는 며칠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저에게 말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하략.'
어려서 그는, 고아원을 세 번 옮긴다. 줄곧 우등상을 받았을 정도로 공부를 잘 한 그는 무수한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누군가가 나타나 그를 도와줬다. 대학에서 임업을 전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그의 성실성과 후광에 힘입은 덕분이다.
시 '줄타기'에선 그의 핏줄찾기가 더욱 선연하게 드러난다. '나는 죽어도,/ 핏/ 줄/ 을/ 놓지않았다'(시 '줄타기' 전문)

30년 전에도 지금도, 고철의 특기는 '시와 노는' 것이다. 고철은 시쓰기를 심오한 문학적 작업이 아닌 놀기로 규정함으로써 친근함과 사랑하는 마음을 이입한다. 고등학교 때는 강원도교육감 상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그는 시와 잘 놀았고 재능이 있었다. 이에 대해 시인 최종천은 "고철은 잘 놀줄 안다. 그가 언어를 가지고 노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평했다.

시인 김학균씨는 고철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빨간 사과를 과도로 깎지 않고 면도칼로 벗겨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고철의 시는 그렇게 쓰여진 것 같아요."

고철이 '시와 놀기' 만큼이나 좋아하는 게 또하나 있다면 그것은 '여행'이다.
"여행을 다니며 만나는 모든 것들은 제게 놀랍도록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긍정적인 그의 성격은 여행, 사진 등에 취미를 붙여 주었다. 시 쓰기와 여행은 '나 지우기'의 한 방식이다.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과 글로 구성하는 포토에세이로 펴 낼 계획이다.
올해 한국나이로 49살인 그는 미혼이다. 왜 결혼을 안 했을까.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혈육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결혼하는 것은 그가 원하지 않는 바다. 그는 지인의 애경사를 찾아가도 절을 하지 않는다. 혈육을 찾았을 때 비로소 절을 하겠다는 게 그의 마음인 것이다.

인천 동구에서 지난 82년부터 살아온 고철은 공중파 방송에 서너 번 출연해 가족을 찾았으나 아직까지 연락을 받지 못했다. 혹시 출연했던 프로그램을 보고 찾아오는 가족이 있을 지 몰라 이사도 못가는 상태다. 가족을 찾을 때까지 그는 여전히 시와 놀아야 한다. 그렇게 가족을 만난다면, 그의 시는 더 숙성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글=김진국·사진=박영권기자 blog.itimes.co.kr/free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