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고 개교 100주년
인천여자고등학교가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그 주체가 사람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100년이란 세월은 그 무게만으로도 대단하다.

인천과 전국을 통틀어 그리 흔찮은 역사를 가진 고등교육기관으로 꼽히는 이 학교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 보고 미래를 점쳐본다.


인천여고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8년 문을 열었다.

조선조 말, 현대식 화폐를 만들다 서울로 옮겨간 전환국 자리가 이 학교의 100년을 지탱해 준 터였다.
그 땐 3년제 학교였다. 학년 당 정원이 50명인 학급이 1개 반씩 있었다.

초대 교명은 인천여학교. 이듬해인 1909년에 첫 졸업생이 배출됐다. 하지만 시절이 일제 치하였고 고등교육을 받는 조선 여학생들이 드물었던데다 당시에도 입시경쟁이 치열, 최초의 조선인 졸업생은 1921년에야 배출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아나운서라고 기록돼 있는 이옥경 동문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8회 졸업생이었다.

우리 현대사가 그렇지만 격변기를 겪으면서 학교 이름과 학제도 여러차례 바뀌었다. 인천여자고등학교라는 지금의 교명은 한국전쟁이 터진 이듬해인 1951년 8월 31일 정해졌다.

이후 지속적인 교세 확장을 거듭하던 인천여고는 100주년을 10년 앞둔 1998년 연수구 연수3동에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할 터를 잡았다.

올 2월까지 95번에 걸쳐 배출한 졸업생 수는 2만7천540명.

지금도 이 학교의 미래의 역사를 쓸 1천650여 명의 학생들이 90여 명의 교직원들과 함께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다.

100년의 세월을 거쳐 획득한 전통의 명문이란 호칭은 허투로 붙은 게 아니다.

학생들은 비단 학력 뿐 만이 아니라 풍부한 감성과 교양을 갖춘 사회 구성원으로 키워지고 있다.

학교의 구호는 '다지자 으뜸 실력! 펼치자 높은 이상!'.

꿈·희망·기쁨이 있는 학교를 만들자며 학생은 능력을 키우고, 교사는 연구하며, 학부모들은 참여하고 응원하는 역할을 본연의 덕목으로 설정했다.

민주시민의 자질 함양을 위한 나의 주장 발표대회와 원탁 토론대회, 독서평가와 통합 논술수업, 차별화된 영어 교육과 외국 문화체험, 실천 위주의 인성교육 활동, 지역사회의 인적 자원 활용을 극대화한 방과 후 학교 운영 등 다양한 학습 및 교육 활동들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학생들의 특기와 적성 발굴과 계발을 위해 마련한 아이템들도 눈에 띈다.

특히 성적에 맞춰 대학가는 식의 진로 결정을 탈피, 자신의 성격과 적성, 재능에 맞는 진로 설정과 학과, 직업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전문 강의와 상담 프로그램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많은 학교와 학생, 교직자들이 실력과 능력보다는 성적과 진학을 더 중시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 진정한 명문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어디 일지에 적잖은 시사를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글=송영휘기자 blog.itimes.co.kr/ywsong2002
 
/사진=박영권기자 (블로그)pyk



"글로벌 리더 키워낼것"


이팽윤 인천여고 제21대 교장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단아하고 품위있는 현모양처상에 맞는 인재를 길러낸 학교라는 평가가 지금까지 100년의 주된 이미지였다면 앞으로 100년 뒤에는 우리 사회와 국가, 인류의 삶의 발전에 기여한 글로벌 리더들을 키워내는 곳이란 평가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기념할 만한 숫자인 100주년 때 학교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자신이 행운아라는 인천여자고등학교의 제21대 이팽윤 교장은 또 다른 100년 역사의 밑둥을 정초하기 위한 구상에 여념이 없었다.

글로벌 리더래서 꼭 대통령이나 유엔 사무총장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자신이 전문으로 하고 있는 분야와 영역에서 성실히 일하고 조금 앞장서서 다른 이들과 해당 분야의 진일보를 이끌고 나가는 사람이라면 바로 그가 글로벌 리더가 될 것이라고 이 교장은 말했다.

글로벌 리더를 키워내겠다는 이 학교가 문화와 과학기술이 풍요롭고 앞서 있어야 선진국으로 인정되는 세계적 흐름을 감안, 지식만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다양한 심미안과 풍부한 문화적 소양을 심어주기 위한 여러 준비를 하고 있는 건 그래서 더 당연하고 필연적으로 보인다.

말똥 구르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는다는 발랄한 학생들이라도 차분히 책을 읽고 실험에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도록 도서관과 과학실 새단장이 여름방학을 전후로 끝났고, 창조적이고 깊이 있는 그림과 작품들을 통해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갤러리 빛여울도 얼마 전 문을 열었다.

빛여울 초대 전시는 개교 10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열리는 개관식 때 이 학교 동문 작가들이 맡기로 했다.

이 교장은 또 내년엔 학교 옥상에 휴식공간으로 녹색 정원을 조성하고, 음악의 감상과 연주가 다 가능한 음악당도 마련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계획대로라면 인천여고는 지역을 대표하는 고등교육기관이자 문화예술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100년의 세월을 이겨낸 게 있다면, 그게 그 지역의 대표이자 자랑거리가 되고 관심과 지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환기한 이 교장은 동문과 인천 시민들께 감사와 부탁의 메시지를 전하며 인터뷰를 맺었다.

"동문 여러분께 부끄럽잖은 후배들,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시민들이 자랑스러워 할 지역사회의 일원과 우리 사회의 동량을 길러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도움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송영휘기자 (블로그)ywsong2002



이옥경, 국내 첫 아나운서 맹활약

인천여고를 빛낸 동문들


우리나라 첫 여자 아나운서인 이옥경 동문을 비롯 우리나라와 지역사회를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전문인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우선 초반의 반세기를 빛낸 동문들을 간략히 살펴보면, 조선 유학생 출신으로서 일본 음악계에서 실력 하나로 인정받았던 장보원 전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18기), 이름 높은 도예가 김석환(38회), 졸업 31년 만에 모교를 찾아 학교발전기금과 장학금을 기탁해 지금의 홈 커밍 데이를 기초한 김광신(39회), 불우한 제자와 이웃 돕기에 앞장서 상록수상을 받은 교육자 한옥분(40회), 국경을 초월한 인술과 사회봉사 활동으로 국회의원도 지낸 신영순(42회), 동문 출신 교사로서 학교 동창회의 주추를 놓은 김인숙(42회), 중구청장 박승숙(43회), 어려운 살림에도 자녀들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워낸 주부 교육작가 신정현(44회), 우리나라 사회학 분야의 권위자 반열에 올라 있는 인하대학교 명예교수인 공정자(45회),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김홍자(46회), 배우 태현실(47회) 등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쟁쟁한 활약을 펼쳤다.

이후의 반백년도 이에 뒤질세라 많은 이들이 자랑스런 동문 명단을 채우고 있다. 인천서예가협회 회장을 지낸 강난주(51회), 인천시 1호 여성 서기관으로 현재 자치행정국장을 맡고있는 장부연(58회)과 사회복지여성국장인 김진희(58회), 중요무형문화제 제27호 승무 이수자로서 숙명여대 부용과 부교수인 손경순(60회),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이수자이자 한복 디자인의 권위자인 김인자(61회), 전문 여성경영인으로 각종 장학사업에 활발히 동참하고 있는 정은섭(65회), 전국 최초의 여성역장으로 현재 인천지하철공사 홍보차장을 지내고 있는 조애경(69회), 우생순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핸드볼 선수 홍정호(83회) 등이 인천여고의 명성을 장식하는 인물들로 꼽힌다.

이들 외에도 1960년부터 1979년까지 무려 19년 동안 여섯 자매가 모두 이 학교를 졸업한 장기자, 기향, 기숙, 기영, 기선, 기애 동문이나 할머니와 손녀 또는 어머니와 딸이 한 학교의 동문이 된 경우도 있는 등 인천여고의 100년은 많은 에피소드와 사연을 갖고 있다.

/송영휘기자 (블로그)ywsong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