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참상
미군과 이라크 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했던 끝없는 사막, 그 위에 널려 있는 전쟁의 잔해.
오늘은 '아르빌' 시내를 둘러보는 날이다. 카메라장비를 단단히 챙겨서 부대 내 약소한 장소로 향했다. 도로 양 옆으로는 무장을 하고 검은 선글라스를 쓴 '자이툰부대' 원들이 총구를 좌우로 겨누고 있었다. 무장병력은 어제보다 많았다. 선 크림을 두껍게 발랐다.

찌는 더위에 방탄조끼와 무거운 철모를 쓰고 나니 땀이 주르르 흘렀다. 실탄을 길게 늘어뜨린 전차가 앞서고 그 뒤로 무장병력을 태운 차량이 뒤따랐다. 나는 세 번째 차량에 승차했다. 황무지 벌판을 20여분 지나니 차량들이 많아지고 건물이 복잡하게 들어선 곳을 지나 성곽 밑에 멈췄다. 그 성곽은 기원전 4,000년 전의 성곽이라고 했다. 성곽으로 올라가니 성곽 아래로 '아르빌시'가 손에 잡일 듯 한눈에 들어왔다. 성곽은 이라크의 중요한 문화재이건만 전쟁으로 파괴되어 흉물스럽게 뼈대만 남아있었다.

성 아래로는 시장인 듯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시내 건물들은 대부분 파괴되어 복구되지 않은 체 방치되어 있었다. '아르빌시'는 '쿠르드족'의 자치구로써 이라크 석유매장량의 40%가 매장된 지역이라고 했다. 그래서 '후세인 군대'가 집중적인 공격을 했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욱 큰 지역이다.

'쿠르드족'은 이라크와 중동지역에 2700여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으나 나라가 없는 민족이다. 그래서 어딜 가나 박해를 받았으며 '후세인 정권'당시 이라크 곳곳에서 전투를 해야만 했다. '쿠웨이트공항'에서 대사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알 수가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쿠웨이트 '다이만부대'로 이동을 한다. 부대로 돌아와 안내를 했던 Y여군 대위에게 귀에 붙이는 멀미약을 구해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옆 건물에 묶고 있는 C공군 대령에게 '비행전술훈련'의 강도를 다소 완화해달라고 했다. C 대령은 빙그레 웃을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얼마 후 Y 대위가 멀미약 1개를 건네주었다. 세세히 말은 안했지만 이곳저곳 수소문해서 어렵게 구해온 것 같았다. 내게는 그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었다.

무참하게 파괴 된 아르빌시에 자리잡고 있는 6000년 전의 성곽 문화재.
'아르빌공항'에는 C-130수송기가 그 큰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수송기 주변에 무장을 한 '자이툰부대' 원들이 에워싸고 경계를 했다. 수송기의 엔진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문이 닫히고 서서히 이륙했다. 아니나 다를까 '비행전술훈련'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시작되었다. 나는 귀밑과 양쪽 귀 위를 손가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눌렀다. 다행이 도착 할 때 보다는 '비행전술훈련'이 짧은 것 같았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체면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웠다. 얼마 후 수송기가 고도를 유지하면서 요동은 멈췄다. 축구공만한 유리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끝없는 사막뿐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태연하게 책을 보는 장군이 있었다.

'알리알쌀렘공항'에 도착을 하니 '다이만부대'장인 K 공군 대령과 장교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제일먼저 '알리알쌀렘공항'을 점령한 탓에 경비가 매우 삼엄했으며 미국과의 치열한 전투로 인해 두꺼운 철근 격납고가 모두 미사일공격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그 중에서 격납고 1동은 멀쩡했다.

'후세인군'이 포로를 격납고에 인질삼아 미군의 공격을 막아보려 했으나 ,미국의 첩보기관에 의해 인질로 잡혀있는 격납고를 알아내 그 격납고는 공격을 하지 않아서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았다고 K 대령이 설명해 주었다. 인질들이 잡혀있던 격납고 벽에는 검정색으로 그린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그때의 초조함과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알리알쌀렘공항'에서 '다이만부대' 까지는 10여분이 걸렸다. 짧은 시간이지만 검문소를 몇 군대 지나면서 미군의 검문이 지나칠 만큼 철저하게 진행되었다.

'다이만부대'는 미군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자이툰부대의 모든 수송 업무'를 독자적으로 맡고 있는 공군부대다. 이라크보다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는 온통 붉은 안개로 덥혀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방문하면서 물과 푸른 숲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다이만부대는 아랍어로 '그대와 함께.' 자이툰부대는 '올리브, 평화'의 뜻이 담겨있다고 했다.

격납고 벽에는 인질들이 그려놓은 그림과 낙서가 그 때의 초조함과 죽음의 공포를 처절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다이만부대에서 쿠웨이트 지원부대로 가는 길은 끝없는 사막이었다. 그런데 그 모래는 건축용으로는 쓸 수 없는 모래라고 했다. 갑자기 모래폭풍이 몰아쳤다. 앞이 한 치도 보이지 않았다. 운전수는 용케도 운전을 잘했다. 30여분을 달려가자 영문으로 쓴 '버지니아 캠프'표지판이 아물거렸다. 그 안에 우리의 쿠웨이트 지원대가 사막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부대를 잠시 돌아보고 곧바로 사막의 전쟁으로 불리는 곳에 도착을 했다. 전투가 치열했음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이라크 군과 연합군의 치열했던 총성은 멈췄지만 산산이 부서진 잔해물들이 모래사막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사진을 정신없이 찍고 있는데 험상 굳게 생긴 '쿠웨이트 군'이 다가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는 듯 했다.

모래바람이 또다시 불어왔다. 보일 듯 말 듯 낙타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전쟁으로 죽어간 영혼들의 울부짖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듯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