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이유로 조만간 철거
1982년, 그때의 기억을 새삼 떠올리다니. 1982년은 기자가 중학생 2학년으로 일본식 교복을 입고 주안 집에서 동인천까지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통학을 했던 때다. 학교는 감옥 같았고 힘과 주먹의 법칙이 통하는 정글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교사들과 선배, 동기들의 폭력에 치를 떨며 중학 3년 동안 뼛속에 각인해 놓았던 것은 인생의 지리멸렬함이었다. 어쩌면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냉소적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때의 암울함이 내 가슴 속 밑바닥까지 무겁고도 두텁게 침전돼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작가 박민규에게도 인생의 지리멸렬함은 마찬가지였다. 내가 중학시절을 싸구려 동시상영관인 인천극장과 자유극장에서 생라면을 씹으며 내 인생의 지리멸렬함을 향해 스스로 야유를 보낼 때 그는 숭의야구장에서 삼미슈퍼스타즈와 함께 삶의 지리멸렬함을 비껴가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지리멸렬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으면서 지금껏 단 한 번도 내 머릿속 저장고에서 끄집어내려 하지 않았던 축축한 기억들이 불쑥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유소년기의 환상과 꿈의 시대가 악성 종양에라도 걸리듯 절멸해 버리고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무서운 '현실'이 아직은 불완전한 영혼에 불과한 소년들에게 윽박지르듯 찾아왔기 때문이다.

'명심해라,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버지는… 바다가 보이는 횟집의 방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셨다.
당연히 그곳에는-마치 내가 헤쳐가야 할 세상과도 같은-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파도들은 경쟁을 펼치는 듯했고, 그 격렬한 해면을 보고 있자니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답답해져오는 것이었다. …언뜻,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나는, 했다.'(박민규 <…마지막팬클럽> 29쪽, 한겨례출판)
나는 수업이 끝나면 동아제분 앞에서 28번 버스를 타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 정거장 길 건너 골목 공장 담벼락에는 커다란 별모양의 로고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금은 전설이 된 프로야구단 '삼미슈퍼스타즈'의 모회사 삼미의 로고였다. 삼미의 자회사 공장이 만석동 어딘가에 있었던 것이다. 28번 버스는 숭의야구장이 있는 도원동 고개를 지났다. 나는 삼미슈퍼스타즈의 경기가 있는 날, 야구장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과 몰려든 사람보다 더 많은 노점리어커들이 도로변에 늘어선 것을 어김없이 보았다. 그리고 삼미슈퍼스타즈에 저주를 퍼붓는 야구팬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82년 프로야구 출범 첫해 삼미가 기록했던 승률 0.188 전적 15승 65패, 팀 최다 실점 20점 등 최하위팀 삼미의 치욕스런 기록들은 83년 전설의 투수 장명부의 등장으로 반짝 2위에 오르는 기적을 이룬 한해를 제외하고 이후 구단을 매각할 때까지 계속된다.

소설 속의 주인공 '나'와 '조성훈'은 슈퍼스타즈를 자신들과 동질화하며 슈퍼스타즈의 패배와 치욕을 마치 자신들이 당하는 것인 양 치를 떨었다. 야구의 도시로 일컬어지는 인천의 야구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인천의 야구팬들은 반입이 금지된 병소주를 몰래 가져와 폭음으로 인천 연고팀의 패배를 삭여야 했다. 술에 취한 일부(일부라 하기엔 그 수가 꽤 많았다) 팬들은 선수들에게 욕설을 하기도 하고, 빈병을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도를 넘어선 팬들도 있었는데 웃통을 벗어부치고 관중석 안전그물에 기어오르기도 했다. 종종 경찰에 끌려가 사법처리를 당하는 사람들도 경기마다 꼭 한두 명씩 나왔다.

그들은 경쟁의 낙오자들이었다. 뚜렷한 직업이 없거나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변변치 못한 부류들이었다. 작가 박민규는 어쩌면 에피소드로 지나쳐버릴 수 있었던 삼미슈퍼스타즈의 오욕의 과정에서 '프로'를 요구하는 '경쟁' 사회에서 좌절한 사람들의 삶을 읽어낸 것이다. 능력이 없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평균 이하의 프로야구단 삼미슈퍼스타즈에서 찾아낸 것이다.

삼미 이후 숭의야구장의 주인은 청보핀토즈, 태평양돌핀스, 현대유니콘스, SK와이번스로 바뀌었다. 인천 야구사의 흔적이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는 숭의야구장은 경쟁과 이윤의 논리에 따라 명멸해갔던 인천 연고팀들이 그랬던 것처럼 숭의동 재개발 사업에 따라 운명을 마감하게 됐다.

텅 빈 관중석에 앉아 SK 2군 선수들이 연습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무명의 타자가 때린 공이 '따악'하는 소리를 내며 허공에 궤적을 그리며 외야로 날아갔다. 공을 좇던 나는 나도 모르게 "멀리, 더 멀리!"라고 읊조리고 있었다.

/글 ·사진=조혁신기자 blog.itimes.co.kr/mr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