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소설
송림동 산동네·주안공단 배경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신 중


주안을 지나칠 때마다 묘한 흥분에 젖곤 한다. 지금은 닥지닥지 처마를 잇댄 낡은 가옥들뿐이지만 과거 주안은 논과 밭, 들과 산, 개천, 짠물이 흘러드는 염전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주안역 뒤편에는 호수 같던 유수지가 있었고 염전이 있었다. 뻘에 뛰어들어 갯지렁이와 망둥이를 잡으며 한낮의 시간을 소일했다.

어느 날 그곳이 거대한 공장지대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땅히 할 일이 없어진 스무 살 청년은 주안역 앞 광장에 마치 '고 웨스트'를 외치듯 진을 치고 있는 포장마차에서 골뱅이를 안주 삼거나 혹은 역 뒤편 포장마차에서 연탄불에 바싹 구운 닭 꼬치를 뜯으며 소주를 마셨다. 주안역 앞뒤로 포장마차가 그리 많았던 이유가 주변 공단에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란 걸 훗날에서야 알게 됐다. 내가 기억하는 노동자들은 퍽이나 피곤에 지친 모습이었다.

소설가 방현석은 80년대 진보적 지식인들, 선배 운동가들이 외길로 잡았던 노동운동에 뛰어들며 인천의 주안공단으로 흘러들었다. 그것은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는 달리 선택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는 정화진, 윤동수, 김한수 등이 그랬던 것처럼 인천에 터를 잡고 우리나라 노동소설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었다. 아니,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절망에 빠졌을 때 최후의 도피처이자 희망의 발원지 역할을 문학이 맡아야했기 때문이었다. 작가 방현석은 단편소설 <내일을 여는 집>의 주인공 성만의 시선을 통해서 주안의 공장지대에 눈물처럼 뿌려져 있는 노동자들의 절망을 읽어낸다.

'오후 내내 공단을 돌아다녔다. 공단본부의 구인 게시판에서 베껴 적은 쪽지를 들고 이 공장 저 공장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이력서를 디밀 용기가 나질 않았다. 몇 번이고 수위실 주변을 맴돌다 발길을 돌렸다. 낯선 철문과 수위실, 그 안으로 보이는 공장 건물들이 도저히 정이 들 것 같지 않았다.'(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99쪽, 창작비평사)

방현석이 1990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단편 <내일을 여는 집>을 발표할 전후 시기에는 노동운동의 고조기이자 노동운동 탄압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노동3권은 휴지조각처럼 무시됐으며, 몸이 부서져라 잔업, 특근, 철야 도장을 찍어도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회사의 꼭두각시인 어용노조는 애초부터 노동자들의 편이 아니었다. 목소리를 높이는 자에게는 구사대의 폭력과 해고통보가 날아들었다. 노동자를 위한 노동조합은 별천지 세상이나 먼 미래의 얘기였다.

주안공단에서 송림동까지는 지척이다. 버스가 미로 같은 공단 골목길을 돌고 돌아 멀게 느껴지지만 걸어서 30분이면 족히 닿는 거리다. 때문에 송림동 산동네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주안공단으로 일을 나갔다. <내일을 여는 집>의 주인공 성만의 거주지도 송림동 산동네이다. 가족들을 호의호식시켜주지 못했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던 성만에게 송림동 좁은 골목은 낙원이었다. 새벽녘 출근길과 캄캄한 밤중 퇴근길 골목에서 올려다 본 하늘의 여명과 별빛은 찬란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맞선 대가로 해고노동자가 된 성만이에게 송림동 골목은 각박한 현실로 다가온다.

'가파른 송림동 비탈길을 성만은 천천히 걸어올라갔다. 언제나 불이 꺼진 창, 그놈의 봉제공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잔업 없는 날이 없었다. 그나마 월, 수요일은 7시에 끝나던 아내는 12월 들면서 10시가 넘었다. 골목 어귀에 들어서면 언제나 먼저 살펴보는 손바닥만 한 창이었다. 깜깜하게 꺼져 있을 생각하자 살을 에는 추위에도 발걸음이 빨라지지 않았다. 비닐봉지를 든 손끝이 시렸지만 창에 불이 켜질 때까지 오래 걷고 싶은 심정이었다. 셋방이나마 그래도 그에게는 이 세상에서 편히 등을 누일 유일한 공간이었다.'(같은 책 136쪽)

내게 주안과 송림동은 각별한 추억의 끈이 묶여 있는 곳이다. 오늘날 송림동 산동네는 절반이 허물어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나머지 절반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기자에게 소설을 가르쳤던 은사이기도 한 방현석은 기자의 첫 소설집을 읽고 "한 때 내가 등을 붙이고 살았던 송림동과 주안의 골목들이 여러 날 눈에 밟혔다"고 평을 보내올 만큼 주안공단과 송림동은 작가에게도 각별했다.

방현석은 <내일을 여는 집> 주인공 성만이 동료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다시 복직을 하는 것으로 소설을 맺는다. 그는 노동자의 희망과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내일을 여는 집>은 우리 문학사와 노동소설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인천 문학사에서도 장중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문학평론가 이희환은 "방현석은 냉정한 현실인식을 통하여 노동자의 일상적 삶과 노동현장의 위기를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을씨년스런 인천의 공단지대와 팍팍한 송림동 비탈길에 대한 공간적 탐사, 그리고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이러한 감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성찬한다.

방현석이 아니었다면 결코 그려내지 못했을 주안공단과 송림동, 노동자의 삶은 세월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비록 그 소용돌이가 아직 절망과 분노일지라도 말이다.
/글·사진=조혁신기자 blog.itimes.co.kr/mrpen

권리에 눈뜬 해고 노동자 끈질긴 투쟁끝 회사 복직

- 소설 '내일을 여는 집'은

인천 송림동 비탈길 문간방에서 아내 진숙과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성만은 회사 회식 자리에서 어용노조 위원장과 싸움을 벌이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해고를 당한다.
성만은 주안공단을 전전하며 새 일자리를 잡으려고 하지만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킨 인물로 낙인이 찍혀있어 주안공단 어느 곳에서도 그를 받아주려하지 않는다. 성만은 동료 해고노동자들과 복직투쟁을 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린 아내 진숙은 성만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내와 갈등을 겪는 성만은 실의와 무기력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아내는 '내일을 여는 집'에 다니며 노동자와 여성의 삶을 자각하게 되며 남편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결국 동료들의 투쟁으로 성만은 복직하게 되고, 셋방에 모인 동료들과 복직 축하파티를 하며 자각한 노동자의 첫 발을 딛게 된다.
단편 <내일을 여는 집>은 방현석의 첫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하다. 이 소설집에는 단편 <내일을 여는 집> 외에도 주안공단의 세창물산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그린 <새벽출정>과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첫장을 연 <파업전야>의 주된 모티브가 된 <내딛는 첫발은> 등 노동소설 5편이 수록돼 있다. /조혁신기자 (블로그)mr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