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 프리뷰 - '숙명'
'운명'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기운이라면 '숙명'은 인간이 타고탄 운명을 말한다.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운명은 자신의 노력과 의지를 통해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반면, 숙명은 정해진 수순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 다르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사람에게는 희망이라도 엿볼 수 있는 운명 보다 일말의 기회조차 허용하지 않는 숙명이 더 가혹한 듯 하다.

영화 <숙명>(감독 : 김해곤 / 제작 : ㈜MK DK / 제공 : 엔토리노㈜)은 남자들 사이의 우정과 의리, 그리고 욕망이 낳은 배신 등 통속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인연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전개는 영화 제목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만큼 가혹스러움을 전해준다.

최강의 팀플레이를 자랑하며 어둠의 세계를 휩쓸던 세 친구 우민(송승헌), 철중(권상우), 도완(김인권)과 맡형인 강섭(안내상)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조직이 치려했던 카지노를 먼저 급습, 돈가방을 챙겨 탈출한다.

어렵사리 돈가방을 들고 도망쳐 나온듯 했는데, 믿었던 철중의 배신으로 네 친구는 조직에 붙잡히고 만다. 조직의 밥그릇을 훔치려 했다는 이유로 맏형인 강섭은 치명적인 린치를 당하고, 우민은 친구들을 대신해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교도소에 들어간다.

2년의 세월이 흐른 뒤, 동료들을 배신했던 철중은 클럽을 운영하며 임대사업을 위한 다세대 주택 건설에 열을 올리고, 강섭은 숨겨 논 돈을 다 써버린 채 숨어 지내는 신세로, 도완은 약에 취해 조직의 후배들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우민은 믿었던 친구의 배신과 끈끈한 의리와 우정으로 함께 했던 동료들이 밑바닥 인생으로 떨어진 것을 보며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운명이 정해준 길에 순응'하며 살기로 한다. 그러나 그 길은 불행하기만 하다.

예전 애인은 조직의 보스의 여자가 돼 있고, 새출발의 기회로 삼고자 했던 훔친 돈은 흔적조차 없고, 가족처럼 아끼는 친구는 폐인이 돼버린 상황은 우민을 더이상 '운명'에 순응하며 살도록 내버려 두질 않는다.

더욱이 우민을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여기는 철중은 지속적으로 우민을 압박해 오고, 조직에서도 우민을 끌어들여 은밀한 거래를 진행시키려 하는 등 주변의 모든 여건들은 우민 스스로의 의지와는 다르게 전개된다.

'운명'에서 탈출하고 싶은 우민은 결국 '숙명'이 옭아맨 사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헤어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부닥치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남자들의 우정을 밑바닥에 깔고 그 위에 배신과 복수를 얹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몸짱 스타들의 출연만으로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리얼 액션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다만 밑바닥 인생의 처절함을 통해 숙명을 보여주는 과정이 너무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에 집중돼 있어 자못 신파적인 분위기로 빠져들게 할 위험이 높은 것이 아쉽다. 장르 구분을 '감성 액션'이라 구분해 놓았지만 감성에 많이 치우치는 기분이다. 20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김도연기자 blog.itimes.co.kr/do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