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성문화회관 떠나는 조순일 관장
지난 4일 인천 부평 한 식당에서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부평 지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뿐만 아니라 그와 인연을 맺었던 이들 20여 명이 모였다. 이날 만나자는 약속을 한 적도 없는데 그가 떠난다는 말 한마디에 한자리에 앉게 됐다. 조순일(50) 인천여성문화회관 관장이 인천을 떠난다. 10여 년 동안 인천 여성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그가 더 큰 세상을 맛보겠다며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지난 6일 인천여성문화회관 관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천과 함께
조 관장은 복지사다. 인천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도 복지관 지킴이였다.
지난 1991년 부평 삼산동 주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삼산복지관도 함께 문을 열었다. 노태우 정권에서 실시한 정책 덕분에 일정 규모 이상이 되는 곳에는 복지관을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 관장은 대학 졸업 뒤 꾸준히 해오던 복지사 일을 10년 동안 그만둔 상태였다. 식물인간이 돼 병실에 누워있던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고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래도 호시탐탐 복귀 기회를 기다려왔다. 그러던 중 삼산복지관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와 같이 일할 생각이 없냐며 손을 내밀었다.
조 관장은 "삼산복지관은 경험이 있고 나이도 많은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내가 그 조건에 딱 맞은거지. 두 말 않고 일하겠다고 말했죠"라고 말했다. 이듬해인 1992년 3월, 그는 인천 부평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 몇 달간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복지관은 도움을 주는 곳일 뿐 요청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매일 복지관을 찾아왔던 술주정뱅이가 그랬다.
"주공에 살던 알콜 중독자가 살았는데 아침마다 우리보다 일찍 나와서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욕을 쏟아부었어요. 그냥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거죠. 복지관 직원들 대부분이 종교인들이라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울기도 하고 난리였죠.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오늘은 술주정뱅이를 이기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조 관장은 이 사람과 6개월을 지내면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바꿨다. 그가 우리와 대화할 방법을 몰라서 술 마시고 욕을 해댄다는 생각에 미치자 다른 방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 사람보다 더 강한 모습으로 대하면서 설득했어요. '술 안마시면 진짜 예쁘겠다' 이러면서. 그 사람 덕분에 알콜 중독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죠."
삼산복지관에서 생활은 10년 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을 푸는 워밍업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쌓을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03년 인천여성문화회관을 맡았다. 복지 분야를 전공했기에 여성은 낯선 분야였지만 낮은 자세로 하나 둘씩 배워갔다.
그는 여성문화회관이 선뜻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아닌 지역사회에 있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하나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누구에게나 시설을 개방해 여성들을 불러모으고 싶었다. 2003년 여성문화회관에 와서 결혼이주여성 사업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였다. 당시 인천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근로자센터는 있었지만 결혼 여성과 관련한 사업은 황무지였다.
조 관장은 "이주여성 사업은 틈새시장이라는 판단 아래 뛰어들었어요. 시기가 잘 맞았죠. 이주여성 사업뿐만 아니라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에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장소로 꾸미고 싶었어요. 여성들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중요한 기관으로서 자리 잡길 원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인천 밖에서 인천을 보고싶다
여성문화회관을 맡은 지 꼬박 5년 만에 조 관장은 고양시로 떠난다. 그곳에서 YWCA 사무총장을 맡게 됐다. 오랫동안 뿌리 박고 살았던 이곳을 떠나는 이유를 그는 "인천 밖에서 인천을 보고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 조 관장이 말하는 헤어짐이다.
이곳에서 그는 인천 여성들이나 사회가 폐쇄적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는 사실에 수 차례 좌절했다. 20·30대 젊은 여성들보다 50대 이상 여성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주는 게 그가 할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60대 이상 노년기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중년 여성들의 모임을 만들어봤지만 참여율은 10% 미만. 여러번 시도했다가 번번히 문을 닫았다.
또 복지시설은 많지만 여전히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만 가는 현실에 답답했다.
조 관장은 "부평을 예로 들면, 다른 구·군보다 복지시설은 많지만 서비스가 적절하게 돌아가지는 않고 있어요. 복지 예산은 매년 늘어나지만 시설 투자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서비스는 나아지는게 없죠. 다른 곳에서 일을 하면서 어떻게하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지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해답을 찾겠다고 나섰지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반만 닦아 놓고 시작도 하지 못한 일들, 이제 막 물 오르려는 사업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스타트 운동과 평생교육과 관련한 사업들은 그냥 두고 가기에는 아쉽다. 노동부 지원으로 '다시 한번 세상 밖으로'라는 이름으로 진행해오던 창업 프로그램도 마무리 짓지 못해 씁쓸하다.
조 관장은 "다시 인천으로 돌아올 때까지 후배들이 열심히 인천 여성들, 사회 약자들을 위해 일해주기 바랍니다"며 "아쉬움이 많은 만큼 애정어린 시선으로 인천을 바라보겠습니다"고 말했다.
 
 /글·사진=소유리기자 blog.itimes.co.kr/rainw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