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주인공 부평역서 첫 만남
견우가 잠든 곳 인천역앞 벤치
두곳 다 영화와 별반 차이없어
명작의 무대 - 7 영화 <엽기적인 그녀>
 
남녀간의 사랑은 정답을 찾기 어려운 명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소개되는 남녀 사이의 사랑은 수십, 수백 가지의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는 다양한 공감을 형성한다.

그런 사랑 이야기 가운데 2001년 7월 개봉한 <엽기적인 그녀>(감독 : 곽재용 / 제작 : 신씨네 / 제공 : 아이엠픽처스)는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코드였던 '엽기'를 풋풋한 로맨스에 접목시켜 재미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1999년 8월부터 대학생 김모씨가 PC통신상에 연재해 인기를 누렸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청춘스타 차태현과 전지현이 남녀주인공 견우와 그녀 역을 맡아 '엽기 발랄'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천의 모습은 '인천역'과 '부평역'이다.

지하철 역사는 대부분이 만남과 이별의 공간으로 많이 등장한다.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인천역'과 '부평역'을 포함한 여러 지하철 역사가 등장하며 그 장소들은 견우와 그녀를 연결해 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영화 전반에 견우와 그녀가 처음으로 만나는 장소는 서울지하철 1호선 전철 안인데,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그녀의 남자친구가 돼 버린 견우가 몸조차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 취해 잠들어 버린 그녀를 업고 나오는 장면에서 부평역사가 등장한다.

자신의 가방과 그녀의 가방을 모두 어깨에 둘러메고 민소매 차림에 짜증도 나고 힘들기도 한 괴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업은 견우의 모습 너머로 '부평역사쇼핑몰'이란 간판이 붙은 부평역사가 보인다.

영화에 등장한 부평역사는 지금과 크게 다른 모습이 아니다. 지금의 부평역사는 서울지하철 1호선 부평역과 대형쇼핑몰 건물이 합쳐진 8층의 외형이다. 실제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부평역사와 쇼핑몰 건물은 각각 독립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부평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1993년 지어진 건물로 지상 3층 규모다. 남부역 방면에서 보면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건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대형 쇼핑몰 건물은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에 8층 규모로 졌는데, 부평역사의 앞쪽과 옆쪽으로 역사를 둘러싸듯 지어져 광장 쪽에서 보면 마치 부평역사가 8층짜리 대형 건물인냥 보인다.

여러 조형물이 설치된 역 앞 광장은 견우가 그녀를 업고 가며 속으로 욕을 했을 법할 정도로 넓다. 많은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곳으로, 노인들의 사랑방 역할과 청소년들의 만남의 장소나 놀이 공간 역할을 하고 있어 인간적인 내음이 항상 뿜어져 나오는 곳이다.

부평역은 영화 전반부에서 견우와 그녀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여관에서 자고 난 다음날 그녀가 견우를 불러내는 약속장소 역시 광장 끝에 설치된 7번 출구다.

부평역이 둘 사이의 인연을 만든 장소라면 '인천역'은 견우와 그녀가 연인으로 완성되는 매개 역할을 하는 곳으로 등장한다. 그녀와 사귀기 시작한 견우가 술이 취한 김에 역으로 데리러 나오라며 엽기적인 그녀에게 괜한 객기를 부리는 장면이 촬영됐다.

영화 속에서 견우가 술에 취해 누워있던 역 앞 광장의 벤치는 사라졌지만 역사의 모습은 영화에서나 지금이나 별반 다른 모습이 아니다. 그동안 수차례의 보수를 거쳤지만 1960년 9월 24일 지어진 건물은 48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단지, 영화 속에서는 '인천역'이란 간판이 네온으로 설치돼 있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역명이 새겨진 커다란 간판이 서 있을 뿐이다.

서울지하철 마지막 역이라 견우처럼 가끔은 내릴 곳을 지나쳐 온 취객들도 볼 수 있고 날이 풀리고 밤기온이 따뜻해지면 견우처럼 한편에 마련된 쉼터에서 잠을 자는 행려자들도 보인다. 이 곳 역시 사람이 있는 공간임을 느끼게 한다.

<엽기적인 그녀>는 작품성보다 할리우드판과 일본판이 만들어질 정도로 대중성이 인정된 영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부평역'과 '인천역'의 모습 또한 영화가 갖고 있는 대중성을 그대로 간직한 장소이다.
 
/글·사진=김도연기자 blog.itimes.co.kr/do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