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신포동·차이나타운서 촬영
만국공원, 시민들의 오랜 휴식처
송현시장 내 순대국밥집도 여전
1 영화 <파이란>
 
시나 소설 등의 순수문학에서부터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대표되는 영상문화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문화의 체감 온도는 작품의 내용은 물론, 등장 인물에게까지 영향을 받는다. 특히 언제부터인가 일반의 관심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소나 배경으로까지 확대돼,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 속의 그 곳은 유명 관광지를 넘어서는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인천일보는 매주 한 차례씩 시나 소설, 영화나 드라마 등 유명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배경들을 하나 둘씩 되돌아 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지난 2001년도에 개봉한 영화 <파이란>에 등장하는 인천의 모습을 찾아가 봤다.


만국공원에서 내려다 본 중구.
영화 속에서 강재가 후배와 술을 마시던 순대국밥집.
영화와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번듯한 간판이 달려있다는 점이다.
뒷골목 친구 용식이 운영하는 클럽 어우동 실제 건물.
이곳은 원래 외국인 전용 클럽이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차이나타운. 파이란이 친척을 찾아 들렀던 중국요리집 풍미 도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인천의 뒷골목 깡패와 불법 체류 중국인 여인 사이의 애달픈 사랑을 다룬 영화 <파이란>은 영화 <쉬리>이후 충무로 최고의 기대주이자 실력파 연기자로 주가를 올리던 배우 '최민식'과 역시 영화 <성원> 등으로 주목받고 있던 홍콩 여배우 '장백지'가 호흡을 맞춰 제작 단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영화는 인천과 강원도 고성 일대에서 촬영됐다.

영화 속에선 파이란(장백지)이 출입국 사무소를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흑백 톤의 첫 장면이 지나면 '1년 후'라는 타이틀과 함께 카메라 앵글이 위쪽으로 움직이며 인천 만국공원 광장에서 스테인리스 난간 너머의 인천항을 잡는다.

짧은 순간 스쳐가는 만국공원에서 바라본 인천항의 모습은 마치 파이란과 이강재(최민식)의 불투명한 사랑을 예고라도 하듯 옅은 해무가 끼어 있는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의 탁한 모습과는 달리 만국공원은 평일은 물론, 주말이면 많은 시민들이 찾는 활기가 넘치는 휴식공간이다. 인천을 대표하는 명물 가운데 하나임에도 관광지라는 느낌보다 언제부터인가 내집 앞마당처럼 친근한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난간 가까이에 위치한 벤치는 영화 속과는 약간 달라진 모습이나 노인에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동인천과 하인천 사이들을 오가며 잠시 숨을 고르는 쉼터 광장의 난간은 여전히 영화 속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난간에 기대서면 영화 속 카메라 앵글처럼 인천 내항 전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영화에는 인천시 중구 신포동 일원과 차이나타운 등이 등장한다.

강재의 친구이자 조직의 보스인 용식(손병호)이 운영하는 클럽 '어우동'은 지금의 신포동 공영 주차장 맞은편에 위치한 외국인 전용 클럽 건물로, 영화 속에서 보이는 '어우동'이란 네온사인 간판을 제외하면 원형 기둥 형태의 외벽 모양을 한 영화속 건물 모양 그대로를 확인 할 수 있다.

파이란과 강재의 인연이 시작된 '희망 직업소개소'가 위치했던 건물은 '어우동'클럽을 등 뒤로하고 해안길을 따라 중구청 쪽으로 100여m정도만 가면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 '공성빌딩'이다.

영화 속에서는 붉은 색 적벽돌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외벽을 새롭게 단장을 해 알아보기 어렵다로 하지만 '희망 직업소개소'의 돌출 간판을 철거하는 장면에서 보이는 '○○해상'이라는 건물 외벽의 업체 상호를 기억하는 눈썰미 있는 영화 팬이라면 지금도 그 업체가 그 건물에 있는 것을 알아 볼 수 있다.

파이란은 영화 속에서 한국에 있는 친척을 찾아보라는 엄마의 유언을 따라 한국에 오게 된다. 그리고 그 친척을 찾아 지금의 차이나타운에 들어선다.

하인천 지구대 옆에 위치한 '중화가'란 현판 글씨가 새겨져 있는 패루를 지나 50여m 정도 만국공원 방향으로 올라오면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요리집들의 즐비한 모습이 드러난다.

바로 그 '차이나타운1길' 끝자락에 파이란이 친척을 찾아 들리는 중국요리 집 '풍미'가 위치해 있다. 중화풍의 붉은 색 기둥과 외벽의 모습은 아직도 영화 속 그대로다.

의지할 곳 없는 파이란처럼 영화 속에서는 휑하니 썰렁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인천 중구의 대표적인 관광코스인 차이나타운은 실제로는 평일도 물론이거니와 주말이면 정통 중국요리를 맛보려는 전국의 관광객들로 북적여 쓸쓸함이나 휑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차이나타운에 밀집한 중국요리집들은 모두가 배달시킨 자장면의 맛과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풍미'와 함께 영화를 맛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는 강재와 후배 경수(공형진)가 술잔을 기울이던 송현시장 내 순대국밥집 '영종집'이다.

올해로 65세를 맞는 성낙분 할머니는 "요즘도 가끔 이곳이 영화 파이란 찍었던 장소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 한다.

웃는 얼굴로 물어보면 성 할머니는 "지금은 가끔 한두 명 정도 구경할 수 있지만 영화가 나간 직후에는 한번에 20~30명씩 단체로 찾아와 식당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밖에 서서 순대를 먹고 가기도 했다"며 연신 찾아드는 손님들에게 순대를 썰어주며 영화 촬영 뒷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영화 속에서는 간판도 없이 미닫이 유리문에 커다란 붉은 색 글씨로 '영종집'이란 상호만이 덩그러니 붙어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동안 영화 덕을 쏠쏠히 보았는지 번듯한 간판도 가게 위에 붙어있고 붉은색 유리문 글씨도 파란색으로 산뜻하게 바뀌었다.

다만, 영화 속에서 좁은 가게 안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있던 주객들은 여전히 오늘도 모여 소주잔을 기울인다.

영화 <파이란> 속에 등장하는 인천의 곳곳은 뒷골목 밑바닥 인생 강재의 삶을 대변해 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보스에게 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예전에 자신에게 잘 해 주었던 동네 슈퍼 아주머니를 감싸는 강재의 순박한 마음을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다.
 
/김도연기자 blog.itimes.co.kr/do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