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삼류건달에게 찾아온 사랑
동네 오락실 한 구석, 담배하나 꼬나물고 괜한 공갈만 일삼는 사내 강재. 뒷골목 동기인 친구는 어엿한 조직의 보스가 돼 있지만 그에게 떨어진 건 작은 비디오 가게 하나뿐이다.

하지만 주먹만큼이나 마음도 약해 '삐리'들을 상대로 하는 비디오 불법 복제 사업도 늘 위태롭기만 하다. 덕지덕지 달린 눈곱에 벌겋게 충혈된 눈이 반짝 빛을 발하는 건 정신없이 돌아가는 오락기 앞에서 뿐이다. 그래서 그는 그냥 건달도 아닌 '삼류' 건달이다.

어느날 우연찮은 사건에 휘말려 조직의 보스와 인생을 건 계약을 하게 되는 강재. 꿈에 그리던 배 한 척과 금의환향을 위해 그는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영문 모를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든다.

"강재씨 고맙습니다. 강재씨 덕분에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 모두 친절합니다. 그치만 가장 친절한 건 당신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결혼해 주셨으니까요."

송해성 감독 최민식, 장백지 주연의 영화 <파이란>은 뒷골목 3류 인생과 불법 체류 중국인 여인의 인연을 아름답고 안타깝게 그린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 강재와 파이란은 살아서 서로 직접 맞닥뜨리는 일이 없다. 비디오 가게 유리 너머로 강재를 마난 파이란은 경찰에 연행되는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강재가 낡은 반명함 사진 한 장으로 알고 있는 파이란을 직접 보게 되는 것 역시 그녀가 죽은 뒤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다. 강재는 혈혈단신으로 한국땅에 찾아든 파이란에게 유일하게 가족이란 것을 만들어 준 남자이고, 파이란은 오락기계와 만화책 밖에 모르는 강재에게 사랑이란 것을 깨닫게 해준 유일한 여인인 것이다.

영화는 차갑고 메마른 일상을 따듯함으로 물들이는 애틋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