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 인기편승 마구잡이식 선정 지양" 목청
지난달 27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의미있는 공청회가 열렸다. 인천 역사 속 여성들을 발굴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인천시여성단체협의회는 지난 5월 문화예술 분야와 종교분야, 역사분야, 사회분야 네 부분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가에 여성인물 발굴 작업을 맡겼다. 다른 지역에서는 2000년대 들어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면서부터 각 지역 여성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던 것에 비하면 조금 늦은 출발이다. 이제 첫 삽을 뜬 인천여성발굴 사업, 어떤 인물들이 인천과 인연을 맺었는지 살펴본다. 또 김윤식 한국문인협회인천시회 회장을 만나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 들어봤다.

공청회 자리에는 공동연구팀 네 명이 이 그간의 성과를, 토론자 두 명이 나와 인천여성발굴사업에 관한 의견을 발표했다. 각 분야별로 보면 문화예술분야는 김윤식 한국문인협회인천시회 회장이, 종교분야는 이성진 영화여자정보고 교사가 맡았다. 또 역사분야는 견수찬 인하대 발물관 학예연구사가, 사회분야는 이희환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강사가 담당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주된 화두는 '누가 인천을 대표하는 인물인가'였다. 특히 올해 초 막을 내린 텔레비전 방송 드라마 '주몽'의 영향으로 소서노가 인천여성으로 꼽히는 데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종합토론 토론자로 나선 이영태 인하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인천을 무대로 하는 전설이나 민담에 소서노에 관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왜 인천하면 소서노를 떠올리는지 알수가 없다"며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인물부터 찬찬히 파고들어야지 인기에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백령도를 심청전의 무대로 만든 것이 인기에 영합한 인물 발굴이 낳은 웃긴 현실이라고 말했다. 20여 년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 '전설의고향'에서 백령도와 심청이가 등장했다는 이유로 관광사업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오히려 김구 어머니 곽낙원처럼 인천에 적을 뒀던 인물을 조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김구 어머니 곽씨는 황해도에서 태어났지만 김구가 인천항재판소에 수감됐을 때 하루 2번 씩 사식을 보내는 등 옥바라지를 했던 인물이다"며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인천여성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인물 한 명씩 집중 조명해 시리즈를 만들어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27일 인천시 남동구 종합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열린 인천여성인물 발굴과 방법론 모색을 위한 공청회에서 토론자들이 주제발표에 대한 종합토론을 벌이고있다. /정선식기자 (블로그)ss2chung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도 토론자와 발표자들이 가진 공통된 주제였다. 이희환 교수는 "인천의 전근대 연구가 주로 정치, 경제, 대외항쟁에 치우쳐 있어 이 분야에서 여성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범위는 매우 좁기 때문에 인천여성사 연구는 기초자료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다"며 "개항 이후 인천을 다룬 글에서 여성노동이나 여성운동을 언급한 부분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분야 연구를 맡은 이성진 교사 역시 "인천 지역 학교사, 교회사 등 자료에는 남성 중심의 역사만 기록돼 있을 뿐 여성 전도사나 수녀, 여성신도에 대한 기록은 단편적이거나 거의 없다"며 "다른 지역에 비해 여성사 연구가 늦게 시작된 탓에 축적된 결과물이 미미하다는 점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온 강정숙 일제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워회 조사관은 인천여성인물 발굴이 인천 출신뿐만 아니라 인천지역의 의미를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강 조사관은 "인천은 프랑스와 미구의 침략, 일본에 의한 개항과 깊이 관련돼 있는 도시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남북한 관계를 드러낼 수 있는 이점을 지닌 곳이다"며 "다수의 월남민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우리 역사에서 비켜갈 수 없는 인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강 조사관은 또 "인천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인천과 연관을 갖고 있는 여성과 설화·문학까지 망라해 연구하는 방법도 의미있는 일이다"고 덧붙였다.


<각 분야별 인천 여성>

■ 근대 이전의 여성들= 고려왕실과 관계를 맺게 되는 인주이씨가는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한 호족세력이었다. 고려 원종의 비 순경태후 무덤은 강화곤 양도면 능내리에 이고 조선 7대 왕 세조의 비 정희왕후의 외갓집이 인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남편 이윤생이 병자호란에 나가 전사하자 바다에 몸을 던진 부인 강씨와 철종 8년, 남편 박종주가 중병으로 쓰러지자 이를 간병한 밀양 당씨 등이 인천을 연고로 했다.

■ 독립운동 분야=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1859.2.26~1939.4.26)과 1919년 강화군 강화읍 장날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연행된 조인애(1883.11.6~1961.8.1), 한국독립당 활동, 한국혁명여성동맹 결성, 한국애국부인회 재건운동 등 독립운동에 앞장 선 최선화(1911.6.20~사망일 미상)와 강화지역에서 여성선교와 독립운동을 이끈 김유의(1869~1947), 독립운동가 선우혁의 딸 선우황 등이 있다.

■ 사회(운동·복지)분야= 이 분야에서 주목할 점은 인천 기생들이다.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자세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지만 일제시대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인천 기생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조선에서 생산되는 포목으로만 의복을 지어입었고 영화학교가 운동장을 확장할 돈이 부족하자 이를 돕기 위한 연주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또 영화여자소학교(현 영화여자정보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항일학생운동 지도와 여성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안영애, 한글점자를 만든 박두성의 부인 김경내와 일제시대 때부터 각종 사회활동에 나선 황희순 등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했다.

■ 교육분야= 한국 최초로 정규 서양음악을 전공한 김애식(김 앨리스)가 대표 인물이다. 김애식은 영화여자소학교를 나와 이화학당에 입학, 일본과 미국에 유학해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초대학과장을 맡기도 한 인물이다. 또 남편 존스목사와 영화학당을 설립한 마가렛 벵겔 여사와 제물포에서 태어나 영화여학당을 다닌 김활란 등이 있다.
 
/글=소유리기자·사진=정선식기자 blog.itimes.co.kr/rainw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