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격구
일부 언론 당시 고구려 비전래설 제기
 
돌궐 등 서역과 직접 문물교류 가능성
 
'中→고구려→日' 도식화 탈피 필요성
 
고대 페르시아의 격구경기 모습을 조각한 작품
13. 격구
 
최근 국민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MBC방송사의 드라마 '태왕사신기' 초반부분에 말을 타며 하는 공놀이인 격구장면이 나온다. 얼마전 일부 언론에서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광개토대왕 시대에는 격구가 없었고 광개토대왕이 숨진 뒤 200년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 전래됐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보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격구가 중국을 거쳐 고구려에 전래된 것이 광개토대왕 이후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고구려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돌궐과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서역국가들과 직접 문물교류에 나선 흔적이 곳곳에 보임에 따라 이 같은 도식적인 교류설은 지양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실제 이번 이란 취재에서의 가장 큰 성과로는 페르시아 성곽과 고구려의 성곽이 상당히 유사하며 당시 상호 성곽기술에 대한 교류가 어떤 식으로든 이뤄졌다는 사실을 제기한 점이다.
 

이스파한 격구장의 골대 모습.
아울러 다른 문화도 교류됐을 가능성이 충분한 만큰 서역에서 중국으로 다시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공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격구는 말을 타고 '장시'란 긴 막대기로 공을 쳐서 상대방 문에 넣는 경기로 서양의 폴로와 비슷하다. 격구는 원래 마상무예의 하나였지만 점차 놀이 측면이 강조되면서 귀족 스포츠로 바뀌었다.

고려 무인정권 시절에는 각종 궁중 이벤트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무과시험의 과목으로 채택됐다.

격구의 생생한 그림을 전하는 곳은 조선시대 군사 훈련 교본이었던 '무예도보통지'로 놀이와 무예를 병행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격구의 일종인 '격방'이 성행했는데, 격방은 넓은 마당에서 막대기로 공을 쳐서 구멍에다 넣는 방식으로 오늘날 골프와 흡사하며 필드하키와 유사한 '장구'라는 놀이도 있었다.

1 격구장 배경은 바로 현재 이란의 이스파한의 이맘광장이다.
조선시대 격구는 궁중에서부터 민간 어린이들까지 광범위하게 즐기던 놀이문화로 용비어천가 제44장에는 격구에 대한 노래와 기록도 있다.

서양의 폴로는 페르시아에서 티베트, 중국 등을 거쳐 인도로 전해졌는데 1862년 인도에서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이 본국에 소개한 이후 본격적으로 보급됐으며, 처칠수상은 유명한 폴로광이었다.

현재 이란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격구경기장도 그대로 남아있어 이란의 두번째 도시인 이스파한의 이맘광장은 옛 페르시아의 격구장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격구 골대와 왕족들이 구경하던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특별취재팀지원:지역신문발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