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6일되는 날 아침 예정되었던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타슈쿠르간을 떠나 다시 쿤제랍 패스를 넘어서 길기트에서 1박, 베샴에서 1박, 라왈핀디에서 1박하고 라호르에 도착하였다. 이번 실크로드 탐사는 비 때문에 반쪽탐사가 되었지만 카라코룸 하이웨이는 철저하게 보았다.

 더욱 간다라 미술은 마침 서울의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전시회가 개최중이어서 파키스탄으로 나가기 전에도 보았고, 귀국후에도 또 한 번 볼 수 있었다. 정말 좋은 시기에 간다라 지방에 다녀왔다.

 1998년 7월의 제1차 실크로드 탐사는 초원의 길(Steppe Route)인 중부 몽골초원을 왕복횡단 하였고, 이번의 제2차 실크로드 탐사는 중국의 사막의 길(Oasis Route)도 지나가려고 하였는데 결국은 남쪽 오아시스 루트인 산악 루트만 보게 되었다.

 제3차 실크로드 탐사는 중국의 오아시스 루트가 될 것이나, 그것이 언제 실현될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또 다시 기회는 올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1999년 7월22일(목)

콕을 경유하여 북부인도를 거슬러 올라간, 우리 비행기는 오후 6시42분(현지시간) 파키스탄 제2의 도시인 라호르에 도착하였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며 31℃로 생각보다는 덥지 않았다.

 공항에서 시 중심가로 뻗은 넓은 도로와 이것과 교차하는 용수로를 따라 직경 1m가 넘는 푸른 가로수가 이어지는 아름다운 도시다. 호텔근처의 가로수들에는 방울전구가 달린 전선을 여러 줄 감았으며 어떤 나무들에는 크리스마스 때처럼 방울전구로 장식되고 있었다. 내일부터 강행군을 해야 하므로 일찍 쉬기로 하였다.

 ▲1999년 7월23일(금)

늘 하루는 라호르를 관광하는 날이다.

 맨처음 「올드 라호르」에 있는 바드샤히 모스크(사원)로 갔다. 옛 성벽에 둘러 싸인 구 시가지는 13개의 성문이 있는 성곽도시로서 옛 모습 그대로의 장인(匠人)과 상인들의 거리이다.

 좁은 도로에는 짐을 실은 수레와 3륜 자동차가 오고 가며, 석조 건물들이 연달아 늘어서 있다. 그런 가운데 장인들의 망치소리도 들려오는, 중세의 성곽도시를 그대로 현대에 끌어 온 것같은 느낌을 준다.

 바드샤히 모스크의 큰 문을 들어 서니 넓은 마당에 양파와 같은 흰 대리석 돔(dome)이 눈에 들어오고, 양쪽 네 곳에는 붉은 사암(砂岩)의 미너렛(minaret·회교사원의 尖塔)이 높이 솟아 있다.

 가운데 돔은 볼수록 장대하여 사암의 붉은 색과 흰 대리석이 잘 어우러져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넓은 마당에서는 동시에 10만명이 예배를 볼 수 있는 세계 최대급의 모스크이다. 그러나, 그 넓은 마당은 텅 비어 있다.

 돔 안에 들어 서니 천장, 벽 등에 아라베스크(arabesque·덩굴풀이 뻗어 나가는 문양을 그린 무늬) 문양이 되풀이 되어 그려지고 있어 이것도 매우 아름답다. 밖은 더운데 돔 안은 서늘하다. 바드샤히라는 것은 무굴 황제를 뜻하며 1673년 제6대왕 오랑제브(1658∼1707년)의 명으로 건축되었다. 돌아 나오는 회랑에서는 붉은 사암에 아라베스크 문양을 파고 있는 장인들이 있었다.

 모스크를 나와 바로 동쪽에 있는 라호르성으로 갔다. 경사진 원형의 도로를 따라 들어 가는데 파키스탄 젊은이와 어린이들이 여러명 우리를 따라 다닌다. 우리들이 구경거리인 것이다.

 이 성도 바드샤히 모스크 만큼 큰 성이다. 무굴 왕조 제3대 악바르 대제(大帝·1556∼1605년)때에 시작하여 제6대왕 오랑제브(1658∼1707년)까지 역대 지배자에 의해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였다고 한다.

 붉은 사암을 벽돌과 같이 쌓고 지붕의 물을 떨어 뜨리는 돌에 사자, 코끼리, 공작새 등 동물들을 새겨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제5대왕 「샤 쟈한」은 모든 일을 장대하게 하기를 즐겼으며 붉은 사암에 대리석을 섞어 페르시아풍의 문양 또는 타일의 모자이크 등을 사용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인 인도의 「타지마할」도 「샤 쟈한」이 만든 것이다. 1981년에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을 본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5∼6명이 따라 다녔던 파키스탄 젊은이와 어린이들이 성을 나올 무렵에는 15명정도로 늘어났다. 우리 일행에 젊은 여교사들이 여러명 있었는데 같이 사진을 찍자고 아우성이다.

 성을 나와 신 시가지에 있는 라호르 박물관으로 갔다. 이 박물관은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하여 건설이 시작되어 1894년에 준공한 오래된 박물관이다.

 제2 전시실에는 간다라 불상들이 있는데 특히 2세기 전반의 것이라는 싯다르타 태자의 고행상(苦行像)은 박력있는 걸작품이다. 지금 서울의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간다라 미술대전이 열리고 있어 서울 출발전에 가 보았다. 그곳의 고행상은 북제품이었으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고행상은 조금 손상은 되었지만 진품이다. 움푹 파인 두 눈, 쑥 들어간 배, 바싹 마른 몸의 피부표면에 튀어 나온 갈비뼈와 혈관들이, 이 작품을 사실적(寫實的)이며 더욱 박진감 넘치게 만들었다. 한참동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박물관을 나와 샤리마르 정원으로 갔다. 무굴 왕조 5대왕 「샤 쟈한」이 1642년에 만든 페르시아식 정원이다. 4m 높이로 3단으로 되어 낙차를 이용하여 분수의 물을 뿜어 올리고 있다.

 샤리마르 정원을 떠나 바자르를 둘러 보고 호텔로 돌아 오는데, 보르카(여자들이 얼굴을 가리는 헝겊)로 눈만 내 놓고 얼굴을 가린 50명정도의 여자 데모대를 만났다. 손에 손에 구호를 적은 피켓을 들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항의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 나라에서도 데모하는 학생들이 자기 얼굴을 못 알아보게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이슬람국가의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는 것은 그것과는 다르다. 시위는 매우 평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