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란 국민시인 허페즈
삶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사랑이 있다.
-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니, 묻지 마라.
이별의 독을 맛보았으니, 묻지 마라.

세상을 돌아 다녔으며 마침내,
난 연인을 선택했으니, 묻지 마라.

그렇게 그녀 문간의 흙을 보고 싶은 맘에,
내 눈물이 흐르니, 묻지 마라.

난 어제 그녀의 입이 내 귀에 속삭인,
얘기를 들었으니, 묻지 마라.

그대는 왜 나를 향해 입술을 깨물고, 왜 말하지 않았느냐,
내 그대 붉은 입술을 깨물었으니, 더 이상 묻지 마라.

나 자신 가난한 생활의 오두막에서 당신 없이
고통을 겪었으니, 묻지 마라. /허페즈


서민의 삶 연민 노래한 14세기 최고 시인
 
17세기 英 바이런·佛 앙드레 지드에 영향
 
쉬라즈에 있는 허페즈 시인의 영묘 전경. 장미의 도시답게 각종 장미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이란인들은 그 어떤 위인보다도 시인을 사랑한다. 그리하여 항상 시인의 영묘를 찾는다. 시인의 묘비나 시비 앞에서 지치고 피곤한 일상을 위안 받는다. 쉬라즈는 이란인 모두가 사랑하는 두 시인, 허페즈와 사디가 태어난 곳이다. 그래서 쉬라즈를 '시의 도시'라고도 부른다. 쉬라즈에 온 이란인들은 제일 먼저 두 시인의 영묘를 찾는다. 그들이 지은 시를 암송하며 시인과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눈다. 심신의 황폐함, 삶으로부터 파생되는 희로애락과 생로병사, 사랑과 이별, 존재자로서의 외로움과 고독함 등에 대해 공감(共感)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다. 이들에게 있어 시인은 삶의 벗이자 인생의 안내자이다.

장미넝쿨 늘어진 영묘 입구엔 참배객들로 붐빈다. 오늘도 시인과 대화하고픈 남녀노소가 영묘 안에 가득하다. 입구 벽면엔 화려한 이슬람 문양과 시인이 지었다는 시가 새겨져 있다. 참배객들은 아랍어로 새겨진 시에 손을 대고 기도하듯 시를 암송한다. 그리고 시인의 관 위에 손을 얹고 나지막하고 경건한 목소리로 시인과의 교감을 시도한다.


시인의 관 위에 손을 얹고
삶을 위로받는 참배객들. 이
들에게 있어서 시인은 삶의
벗이자 인생의 안내자이다.
14세기 페르시아 최고의 시인인 허페즈는 '가잘'이라 불리는 시를 썼다. 그의 시는 술과 사랑을 소재로 신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사실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연민, 위선에 대한 경멸과 궁극적인 실체에 대한 탐구를 역설과 반어의 형식으로 노래했다. 허페즈의 시를 관통하는 이념은 수피즘이다. 수피즘은 인간이 스스로 신비한 체험을 통해 자신을 소멸함으로써 '신인합일(神人合一)'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참배객들은 이러한 신인합일 정신을 추구했던 시인과의 교감을 통해 스스로를 위안 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란인들은 허페즈의 시집을 꾸란처럼 소중히 여긴다. 이는 곧 이란인의 시 사랑이 지극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시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긴다. 모임이나 잔치 때에도 누구나 허페즈의 시 한 두 편은 암송하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문학의 정수는 시다. 그리고 이 시는 중세 세계문학의 절반을 차지했다고 할 정도로 세계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도와 터키는 물론 아랍문학의 태동도 페르시아였다. 또한 페르시아의 시문학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그리스를 오가며 동서양의 문학을 연결시켰다. 중국의 위대한 시인인 이태백도 페르시아계 출신이었다.

페르시아는 많은 시인을 배출했다. 허페즈 외에도 페르도우시, 몰라비, 오마르카이얌 등 수십 명에 이른다. 오마르카이얌이 외부에는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란인들은 단연코 허페즈를 페르시아의 시성(詩聖)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허페즈의 시가 이란인들의 정서와 융합되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허페즈의 시는 아랍세계와 서구세계에까지도 큰 영향을 끼쳤다.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는 '대적할 자가 없는 시인'이라고 극찬하고, 그의 시적 소재들을 모방하여 서정 연시집인 <서동시집>을 펴냈다. 17세기 스페인의 칼데론, 영국의 바이런 및 프랑스의 앙드레 지드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니체도 '허페즈에게'라는 시를 썼을 정도로 허페즈는 세계적인 시인이었다.


허페즈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약속이 있는데, 우정과 애정이 그것이라고 했다. 이는 허페즈의 인본주의적 삶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으로 사람들 사이에 사랑과 정, 그리고 평화를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오늘도 평화라는 미명 아래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우정과 애정 또한 배신과 복수, 이별과 파탄만을 양산하고 있다. 허페즈의 시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까닭도 바로 영원한 평화와 사랑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특별취재팀
지원:지역신문발전위원회


중앙아시아 출신 이태백 중세페르시아·中 문학 접목 발전

중앙아시아에 널리 분포하는 타직인들은 지금도 페르시아어를 쓴다. 이는 이란 동부지역의 코라손 주와 합쳐 중앙아시아 지역을 코라손권(圈)이라고 부르며 페르시아인과 중앙아시아인의 자유로운 교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달'과 '술'의 시인인 이태백은 중앙아시아 키르키즈스탄의 토크마크에서 태어났다. 이곳 역시 코라손권에 포함되는 지역으로 페르시아인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다. 5살 때 아버지를 따라 현재 중국의 사천성 강유(江油)지역으로 이주했지만, 이곳 또한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페르시아인, 중앙아시아인 등 서역인들이 많았다. 당시에는 페르시아 문명이 발달하여 각지로 전파되었는데, 이중에서도 비선무라는 춤이 크게 유행했다. 그리고 호선무(胡旋舞)를 추는 무희들은 대부분이 페르시아 계통이었다.

이태백도 그의 시에서 페르시아 무희와 어울려 술을 마시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

'사랑'은 페르시아 종교와 철학,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담론이다. '술'은 구도자들에게 신적 근원의 체험을 갈망하는 도구였다.

술이 신의 이슬로 비유되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술은 또한 수피즘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페르시아 문학의 영원한 메타포가 된다. 이태백이 도교에 흠뻑 취하여 도사(道師)를 찾아다니며 그들과 돈독한 교분을 쌓은 것이나, 평생을 술과 함께 세상을 노래한 것도 페르시아인의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이태백의 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상징인 '달' 역시 그렇다. 명경지수(明鏡止水)인 달은 신선이 갖고 다니는 거울에 비유된다. 이란인들의 새해 식탁에는 거울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새해 첫 날, 명경지수 같은 마음을 가다듬기 위한 것이리라.

페르시아의 수피교도들은 차오르는 달을 보면서 매일 새로운 깨우침을 얻었다고 하는데, 페르시아의 정신을 소유한 이태백 역시 신의 이슬을 마시며 신선이 되고자했던 것이다.

이태백은 페르시아적인 사랑 노래를 중국의 그것과 혼합하여 새로운 사랑을 노래했다. 이태백의 시가 뛰어난 것은 그가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중세 페르시아 문학과 중국의 문학을 흡수하여 진일보된 문학을 창조한 국제적인 시인이었다는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