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매매 여성 과거 드러날까 노심초사
쉼터 좁고 자활교육 뒤 사후관리도 부족
주택자금 지원 등 실질적 대책마련 시급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로 규정한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시행된지 만 3년이 지났다. 법률 시행으로 인천, 서울 등 전국 각지에 있던 성매매집결지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하지만 성매매는 여전하고 탈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자활 프로그램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5일 인천여성의전화가 운영하는 공동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탈성매매 여성 10명을 만났다. 이들에게 3년은 단순히 숫자로 평가할 수 있는 기간이 아니다. 이들은 "탈성매매 여성이 가진 문제는 기계가 아닌 사람의 문제"라고 말한다. 탈성매매 여성들에게 3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이들이 꿈꾸는 세상을 들어본다.


인천여성의전화가 있는 건물 2층에 탈성매매 여성들이 생활하는 공동작업장이 마련돼 있다. 판매할 도예와 퀼트를 만들고 강의와 토론 등을 하는 곳이다. 탈성매매 여성 10명을 만나기 위해 공동 작업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낯선 이를 반기는 눈빛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모두 경계와 날이 선 눈을 하고 있었다. 어렵사리 꺼낸 "뭘 배우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이들과 1시간30분 동안 각자 살아온 얘기를 짧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탈성매매 여성 A씨는 지난 5일 만난 10명이 말하는 내용을 묶은 가상의 인물이다.

▲ 탈성매매 여성, 자신을 말하다= A씨가 지옥같은 그곳을 떠난 지 어느새 만 2년이 돼 간다. 30대 후반이 훌쩍 넘은 나이에 오랫동안 살아온 삶 터를 떠나는 일은 웬만한 결심이 없고서는 불가능 했다. 몇 년 전 탈출하고 싶어 옷가게를 찾아갔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난감했다. 경력란에 아무것도 쓸게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정도가 그대로 비어있었다. 그는 "짧게 일해서 경력이라 할 만한 곳이 없어요"라는 말로 대신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한 달이 끝이었다.
 
 10여 년 동안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해온 터라 낮에 일해야 하는 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다. 1달 번 돈은 70만원. 그는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그대로 뒀다. 집결지에 있으면서 돈을 쓰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이다. 집결지에 있을 때 그는 하룻 밤 번 돈 일부를 포주와 나누고 밀린 빚을 조금 떼 줬다. 그러면 그들 손에 쥐어지는 돈은 없다. 그래도 화장품, 생활용품 등 필요한 것은 모두 포주가 사다줬다. 이동할 때는 업소와 손잡은 택시 업체가 이들을 목적지까지 '모셔다'줬다. 이는 모두 이들의 빚이 됐다. 포주의 교묘한 술수에 이들은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버렸다.

그는 특별법이 생기자 바로 여성의전화 사무실을 찾았다. 그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일자리를 주세요"였다. 아침에 눈을 뜨는 훈련을 했다. 오랫동안 힘겨운 삶 때문에 생긴 병도 하나씩 고쳐나갔다. 공동작업장으로 나가 일도 시작했다. 월 44만원씩 생계비 지원은 1년 뿐이라 도예와 퀼트를 만들어 생활비를 벌었다. 요즘은 각종 단체에서 하는 도예 실습 강의를 나가기도 한다. 지난 8월부터 '동료 상담원'제도가 생겨 성매매집결지로 직접 나가 상담을 하고 생활비를 벌고 있다.

차곡차곡 돈을 모으면서 그는 돈을 쓰는 법을 배웠다. 택시보다는 버스를 이용했고 한 정거장은 걸어다녔다. 싸고 좋은 상품을 찾으러 다니는 일상적인 기쁨도 쏠쏠하다. 못다한 학업도 마치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야도 많지만 지금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 잠시 접어뒀다.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마음은 불안하다. 그는 "사람들이 내가 탈성매매 여성이란 사실을 알까봐 두렵다"며 "새로운 일자리를 얻으려 해도 커다랗게 비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냥 스쳐도, 대화만 해도 자신들의 과거가 들킬까 마음 졸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알면 알수록 답답하다.

▲ 우리는 성매매 여성들의 과거고 현재고 미래다= 성매매집결지에서 나온지 3년 정도 된 B씨는 얼마전 동료상담원 프로그램에 참가해 성매매집결지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생들이 "언니가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기뻐요. 여기서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용기를 얻었다.

이들은 성매매 여성 대부분이 그곳을 떠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다만 그들에게 떠날 용기가 없을 뿐이다. 공동작업장이 마련돼 있지만 공간이 협소하고 프로그램이 한정된 탓에 성매매 여성들이 가끔씩 찾아와도 실망하고 돌아간다고 한다.

이들은 "성매매 여성들이 벗어나기 위해선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쉼터나 공동작업장은 그저 시작일 뿐이다.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는 데 전부가 될 수 없다. 사회에서 이들을 받아 줄 일자리가 없다면 탈성매매 여성들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B씨는 "더 이상 과거는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우리의 꿈은 작은 가게라도 얻어서 다른 사람 시선 신경쓰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상징적인 공간이 생기면 성매매 여성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3년이 남긴 성과와 과제= 성매매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3년이 지나자 한 편에서 성과없이 돈만 쏟아 붓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천시는 매년 2억5천만원 정도를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사업에 쓰고 있다. 지난 2005년에 쉼터와 공동작업장을 만들어 생활비와 활동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인천에 몇 명이나 되는지, 탈성매매 사업에 성공한 이들은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수치는 없다. 학익동 '끽동'과 숭의동 '옐로하우스' 등 집결지를 철거한 뒤 그곳에서 생활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어떻게 할 지 계획도 모호하다. 또 자활 프로그램을 끝낸 탈성매매 여성들의 사후 관리도 부족하다.

하지만 탈성매매 여성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복지가들은 성매매가 가진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금자 인천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탈성매매 여성들이 가진 특징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숫자는 의미없다"며 "이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전반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나온 결과만 갖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고 말했다.

탈성매매 여성들은 대부분 개인 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에 자활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쳤어도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연락을 끊는 경우가 많다. 집결지 철거 뒤 거리에 몰리게 될 성매매 여성들을 강제로 자활 교육에 참여시킬 수도 없다. 신 사무국장은 "성매매 여성들도 사람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 없다. 그저 홍보를 통해 그들을 안아줄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최선이다"고 말한다.

장소가 협소한 점도 문제다. 지난 2005년 11월 문을 연 쉼터에는 한 달 평균 6~7명 씩이 생활한다. 최대 정원은 14명 뿐이다. 집결지가 없어진 뒤 많은 여성들이 쉼터를 찾더라도 수용 공간이 없다. 공동작업장 역시 한 번에 20여 명 정도만 교육과 생활이 가능하다. 또 집결지에서 나온 여성 대부분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주거이지만 쉽터에서 생활하는 1년반이 지나면 해결 방법이 없다. 집결지를 철거하고 나온 보상금 대부분은 건물주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성매매 여성들을 세입자로 해놓고 돈을 떼 먹는 일도 있다. 이에 여성단체는 집결지 개발을 맡은 주택공사나 도시개발공사에서 그곳에서 생활했던 여성들에게 주택 자금을 일부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신 사무국장은 "3년은 짧은 시간이다.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20년 이상 익숙해진 삶을 온전히 바꾼다는 것은 탈성매매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며 "쉼터나 공동작업장을 넘어선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유리기자 blog.itimes.co.kr/rainw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