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모와 함꼐사는 현지양 하루일기
김현지(가명·10 동구 송림동 A초교 3)양은 학교가 끝나면 동네 공부방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공부를 한다. 1년째 이곳 공부방을 이용하고 있다. 은지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는 언니 오빠들은 대학생들이다.

현지는 초등학교에 들어서면서 흔한 과외 한 번 다녀보지 못했다. 남들에게 공부를 배우는 것은 이곳 공부방이 처음이다. 그는 이곳에서 방과후에 짜여진 시간표대로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돌아가면서 해주는 공부가 전부다.
 
 현지양은 이곳에서 수학과 영어,국어,한자 등을 배운다. 처음에는 대학생 선생님들의 강의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자상하고 친절하게 지도해주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의 지도에 매일같이 빠지지 않고 이곳에서 공부를 한다.

현지는 처음에는 친구들도 낯설고 선생님과도 친해지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에게는 언니 노릇을 한다. 오후 3시가 되면 학교 수업이 끝나고 공부방에 와서 그날의 공부할 스케줄을 본다.

월요일날은 현지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랑 놀자'가 있는 날.친구들이랑 빙 둘러앉아 책을 읽고 자기가 읽은 책의 내용을 친구들에게 소개해주는 시간이다. 같은 또래의 친구 10여명이 돌아가며 각자 자기가 읽었던 책 내용에 대해 토론하며 각자의 의견을 나눈다.

현지는 화요일이면 이곳에서 연극하고 글쓰기를 한다. 대학생 선생님과 조를 편성해 아동극 등을 한다. 직접 무대를 설치하고 극본을 만들어 본다. 대본을 외우고, 배우가 되어 연극을 한다.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재미있고,자꾸만 기다려 지는 시간이다. 수요일 날에는 이곳에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한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맛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이거나 편모,편부나 조손 아이들이다. 하나같이 과외와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다.과외를 다니고 싶어도 경제적인 지원이 전혀 뒤따르지 않는다.

목요일은 역사 문화체험을 한다. 공부방에서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과 인천지역 문화현장 곳곳을 다니며 현장체험을 한다. 금요일은 자율적으로 각자 주어진 공부를 한다. 이처럼 공부방 어린이들은 매일같이 스케줄이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고 있다.

독서를 하는 날에는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가져와 조용히 읽고,연극을 할때는 자기들끼리 조를 나눠 필요한 소재를 만들어 연극을 한다.
 
 매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스케줄이 이뤄지지만 개별적인 학습이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 개인 과외도 이뤄진다. 체육이 있는 날이면 오후 5시가 넘어서 프로그램이 끝나기도 한다.
 
 공부방 비좁은 마당에서 운동을 마친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와 공부방에서 마련한 저녁식사를 한다. 이때는 남자와 여자 아이들이 따로 밥을 먹는다. 밥을 먹기전에는 세면장에 일렬로 줄을 서서 손 씻는 순서를 기다리기도 하고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씻겨주기도 한다.
 
 밥을 먹고나면 제각기 식기통에 자기가 먹은 밥그릇을 넣고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자기가 맡은 구역을 청소한다. 현지가 맡은 구역은 책이 많은 공부방,아홉살난 연석이와 열심히 걸레질을 하면서 장난을 치다가도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면 또 열심히 청소를 한다.
 
 청소가 끝나면 오후 6시3030분. 이제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간다. 이 시간이면 다른 또래 아이들은 다른 과외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고 공부할 시간이다. 이들은 공부방에서 집으로 가는 것을 싫어한다. 집에가면 함께 놀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현지는 부모님이 안계시고 할머니와 단둘이서 생활을 한다.하지만 현지의 얼굴 어느 곳에서도 일그러진 생활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이곳 공부방에 있는 아이들 대부분은 방과 후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 줄 수 없는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다.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을 다닐 수 없지만 선생님들과 숙제를 같이하고 수학문제도 같이 풀며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현지는 70세가 넘은 할머니와 살면서 이젠 어엿한 어른이 됐다. 앞으로 어른 '치과의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치아가 좋지않아 식사시간이면 고생하시는 할머니께 틀니를 해주고 싶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소득층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부방은 각종 사회복지기관마다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기관에서의 공부방은 대체로 저소득층 중에서도 생활보호대상자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일반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은 복지서비스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그렇다고 학원을 가기에는 부담이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한 사회복지관이 관할하는 지역은 매우 폭넓어서 공부방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생활보호대상자의 아이들인 경우에도 사회복지기관이 모두 수용하기가 쉽지 않고, 아이들이 복지관까지 오기 번거로운 점도 있다.
 
 또한 사회복지기관에서의 공부방은 주로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원봉사자의 결원이 발생하거나 또는 자원봉사자가 방학 때 공부방 선생님 활동을 할 수 없으면 아이들은 쉽게 학습 의욕을 잃게 된다.
 
 즉, 한 선생님이 지속적으로 아이들과 공부할 수 없는 경우에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교회를 이용하는 것이다. 교회는 지역사회복지관보다 훨씬 그 숫자가 많고, 마음만 먹으면 지역사회의 주민들과의 친밀도도 상당히 높일 수 있는 곳이다. 교회는 사회복지기관보다 일반 아이들과 더욱 친숙해 질 수 있다.
 
 교회에서는 주일(일요일)마다 '주일학교'라고 해서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있다. 그곳에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이 있는데, 이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주로 일반 청년부(주로 대학생)이므로 지적 능력도 가지고 있어 훌륭한 인적 자원이라고 생각된다.
 

이곳에서 어린이들을 가리키고 있는 대학생 김형우(26·I대학3년)씨는 "공부방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우리사회에서 소외된 이웃들로 문화와 각종 사회적 혜택을 전혀 부여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계층들이라"면서 "이들이 맘놓고 공부하면서 각자 자기의 꿈을 키워갈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나가는 사회적 관심과 합의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병화기자 (블로그)bh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