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난 3월말 치료 중이던 산업재해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의 강제치료종결에 따른 심리적, 경제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또 발생하였다. 이번 사건의 개요를 보면 뇌출혈과 이어진 우울증, 적응장애 등의 후유증으로 산재치료를 받던 환자에 대하여 수년간 치료해온 주치의는 환자의 상태가 더 호전되지 않아서 지속적인 치료가 요구된다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환자를 제대로 보지도 못한 근로복지공단의 자문의협의회에서는 일방적으로 강제치료종결 결정을 내림으로써 환자는 이에 대한 심적 고통과 부담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경우이다.
이처럼 일하다가 다쳐서 산재치료과정에서의 발생하는 강제치료종결 등의 부당한 행정조치로 인하여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한해에도 40명 이상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자살의 경우를 제외하고, 국내에서는 한해 평균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연간 2천800명 이상 발생하고 있다. 하루에 무려 7~8명이 교통사고로, 전쟁도 아닌, 일하다가 산업재해로 소중한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산업재해 사망률은 단연 세계최고의 수준으로 다른 나라의 산업재해 사망률의 수십 배에 이르는 그야말로 경악할 수준이다. 눈을 돌려 지역을 살펴보면 산재공화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인천의 산재발생률은 전국의 평균을 웃도는 높은 수준이며, 이 또한 소규모의 작업장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제는 노동조건과 산업재해마저도 양극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기본적 원인과 구조는 끝없는 생산성 향상 과정에서 작업자의 특성과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노동강도, 부적절하고 열악한 작업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자의 안전과 생명보다는 이윤과 생산성이 우선되는 생산구조가 그 근본원인이다.
다시 말해 선진국을 외치고 화려한 국제스포츠 이벤트를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그늘에 노동자 민중의 삶은 철저히 외면되고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개발과 성장의 그늘에 노동자들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는 이러한 왜곡된 생산구조가 빚어낸 비극적 결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과 이윤추구는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성장의 과정에서 경제활동의 주체인 노동자가 마치 하나의 부품처럼 취급되어 열악한 작업환경과 극심한 노동강도로 인하여 다치고, 심지어 목숨을 잃거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강제로 치료 종결을 당하여 자살에까지 이른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사회적 모순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산업역군, 산업전사로 추켜세우다가 그들이 다치고 병들면 골치 아픈 존재인 산업쓰레기로 취급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누가 이런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의 발전에 동참할 수 있겠는가?
누구를 위한 성장이고 무엇을 위한 개발인가. 어떤 논리와 명분으로도 성장과 개발과정에서 희생되는 노동자들의 생명은 정당화 될 수 없다. 4월은 '산재추방의 달'이며 4월 28일은 전 세계가 함께 하는 '산업재해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진정으로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이윤보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기원하며 스스로의 목숨으로 부당함을 고발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김철홍 인천대 교수·건강한 노동세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