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은 옛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다. AD 330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지금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정하면서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이름으로 비잔틴제국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이후에도 이스탄불은 AD 1453년부터 480년동안 오스만제국의 수도로 있는 등 약 1천6백년동안 번영을 누려왔다. 그래서 이스탄불에서는 얼핏보면 서양인이고 다시 쳐다보면 동양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터키는 신석기시대부터 인구가 밀집해 있었던 문명의 발상지다. 선사시대(BC 3천~4천년)에는 서쪽 트로이와 해안의 섬들로 구성된 「구 트로이문명」과 동쪽 고원지대에 형성된 「고 아나톨리아문명」이 있었다.

 BC 2천년경에는 인도-게르만 히타이트족에 의한 제국이 자리를 잡았으며, 이후 로마와 몽고, 오스만 투르크 등 유럽과 동양의 강력한 제국들의 터전과 각축장이 되었다. 오늘의 터키는 터키 독립의 영웅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에 의해 1923년 설립되었다.

 터키의 수도는 인구 4백만이 살고 있는 내륙의 앙카라(ANKARA)다. 그러나 인구 1천2백만명이 넘는 항구도시 이스탄불이 제1의 도시다. 면적은 77만9천4백㎢이며, 인구는 약 6천3백만명이다. 터키는 해안에는 지중해성기후로 기후가 좋으나 내륙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며 영하 15도까지 내려간다.

 터키에는 수많은 유적지가 있다.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보스포러스해안에는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기 위해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나흐멧 2세가 세운 성곽이 고색창연하게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금은 야외음악회와 민속극 등이 펼쳐진다.

 또 6세기 비잔틴제국의 상징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모자이크 성화(聖턛)들이 장식돼 있는 성 소피아성당도 있다. 소피아성당은 오스만제국에 의해 정복된 뒤 회교사원으로 개조돼 사용되다가 근대(1935)에 들어와 박물관으로 바꿔졌다. 소피아성당은 성 베드로성당, 성 밀라노성당, 성 바울성당 다음으로가는 네번째로 큰 성당이다. 이 건물 본당의 거대한 기둥들은 헬리폴리스의 태양신전이나 로마에서 가져와 건축됐다.

 소피아성당 옆에 건축된 회교사원 불루모스크도 볼 만하다. 오스만제국의 황제인 술탄 아흐멧 1세의 명령으로 지어진 이 사원은 세계에서 6개의 첨탑을 갖는 유일한 사원이다.

 이 사원의 기둥 밑에는 당시 오스만제국에 굴복했던 유럽과 아시아의 각국에서 보내온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가 묻혀 있다고 한다.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터키는 수년전부터 이곳의 보물을 꺼내 팔아 해외부채를 갚자는 의견이 분분했다. 찬반이 분분한 가운데 결국 터키의회는 이곳의 보물을 꺼내자는 결의를 했지만 막상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 사원은 보물을 꺼내면 무너지도록 설계가 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터키에는 15세기 오스만제국의 궁전으로 세계의 희귀한 보물이 가득한 토카프궁전이 있다. 호머의 일리어드의 무대였고 사도 바울이 환상을 본 후 마케도니아(유럽)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기로 결심한 트로이(Troy),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아라랏산이 있다. 또 요한계시록의 7대교회, 7세기경 모슬렘과 로마인들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 살던 지하동굴 등 수많은 기독교 유적지가 있어 성지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귀중한 역사적 유물과 성지,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터키지만 경제는 어려움을 면치 못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3천달러 정도로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집권하더라도 1년을 채 못가는 정권의 불안정도 터키의 어려움을 더해 주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1만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지진은 터키 경제를 깊은 수렁으로 몰아 넣고 있다.

 터키는 현재 EU가입을 목표로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순탄치만은 않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의 앙숙관계인 그리스와 농업생산이 활발한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터키농산물의 수출공세를 두려워 해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최근 지진으로 어려움을 당한 뒤 그리스에서 화해 제스처를 보내는 등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터키 국민은 99%가 회교도이나 매우 개방적이다. 회교국이지만 공창(公娼)이 있을 정도다.

 한국인에 대해서도 호감을 갖고 있다. 6·25때 파병을 해 피를 흘려준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이스탄불의 말마라(Malmara) 호텔 앞 광장에서는 1년에 한번씩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모임이 있다. 그러나 이들 용사에게 재이스탄불 한인회에서 하루 한끼 식사와 음료수를 제공하는 게 고작이라는 것이다. 〈송금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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