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젼 섬머아일랜드를 가다 - (2) 섬머아일랜드 下
'가뭄 심각' 주민 상당수 피부병 앓아
월드비전 인천지부 식수 지원사업 첫삽

식수 지원사업 현장에서 환영행사에 참가한 현지 소녀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아침 일찍 눈이 번쩍 떠진다. 새벽 여운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활동하기에는 아직 이른 오전 5시(현지시간), 아마도 3시간 남짓한 시차 때문일 것이다.
전날의 피로가 천근이 돼 양 어깨를 짓누르지만 마음만은 흐뭇하다. 적도의 땅 스리랑카를 방문한 것 이상으로 가슴이 벅차 오른 이유는 때묻지 않은 미소를 간직한 섬머아일랜드 아이들과 즐거운 만남 때문이리라.
내게 사라져버린 순수함이란 단어를 다시 찾게 해준 이 곳 아이들을 생각하니 자꾸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렇게 원하지 않은 '아침형 인간'이 돼 스리랑카에서의 삼 일째를 맞았다.

섬머아일랜드 마지막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스리랑카 방문의 목적인 식수 시설 지원사업 예정지를 찾게 된 것이다.
일행이 탄 버스가 비포장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흔들림이 지나치다.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불안하기만 하다. 일행을 안내해 줄 20대 중반의 여성이 버스에 올라탔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키가 170㎝를 훌쩍 넘은 듯 하다. 버스 분위기가 일순 바뀌며 서툰 영어가 오가기 시작했다. 이유도 없이 남자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날 첫 방문지는 윤낙영 북부교육청 교육장이 지원하고 있는 결연 가정이다. 30분 남짓 비포장길을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울창한 산림을 향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 버스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든 흔적이 남아 있다. 건장한 두 남자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일행이 탄 버스가 무사히 결연 가정에 닿을 수 있도록 두 남자가 새벽부터 나무를 자르고 길을 닦아 놓았다.
이방인의 불편을 최소화 하기 위한 섬머아일랜드 현지인들의 배려가 따뜻하게 전해진다. 위태롭게 산림을 지나던 버스가 붉은 벽돌의 집 앞에서 차를 세웠다.
식사 사업장을 방문한 일행을 위해 현지인들이 환영 행사를 마련했다.
마당에는 우리 봉선화와 비슷한 모양의 식물이 붉은 꽃을 피우고 있고 집 앞은 도착하기 전까지 빗질을 했는지 발자국조차 없다. 빗질 흔적이 바닥에 나선을 그려 놓았다.
5살 니뿐디가 윤 교육장을 보자 얼굴을 붉힌다. 아버지가 니뿐디의 등을 살짝 밀치자 그제야 윤 교육장의 품에 안긴다. 노란색 꽃 목걸이를 윤 교육장 목에 걸어준 니뿐디의 가정은 아버지와 고모 내외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니뿐디 어머니는 식솔을 책임지기 위해 쿠웨이트로 지난해 돈을 벌러 떠났다. 별다른 직업이 없는 아버지가 윤 교육장이 매달 보내주는 2만원으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이 곳은 전기조차 공급되지 않아 차량용 배터리를 이용해 1960년대에나 사용했을 법한 라디오로 세상 소식을 듣고 있다. 일행을 위해 니뿐디 고모가 소박한 상차림을 내놓았다. 바나나와 파인애플, 그리고 현지식 빵이 전부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큰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소박한 2만원이 니뿐디 가정에게는 거대한 선물이 된다. 월드비전 결연아동 사업이 세계 곳곳에서 헐벗고 굶주린 아동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고 있다.
이어 섬머아일랜드 중에서도 가장 오지인 세바나갈라 누게갈라야야군에 방문했다. 이 곳은 몬순기간인 11~1월을 제외하고는 마실 물조차 구하기 힘든 곳이다. 지난 5년간의 극심한 가뭄이 3천여 지역 주민의 생활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식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3㎞ 떨어진 저수지로 물을 길러와야 한다. 1~2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약 10ℓ에 불과한 물을 길어 오면 하루도 사용하지 못한다. 펌프 우물이 마을 10곳에 설치됐지만 가뭄 탓에 2곳을 제외하고는 기능을 잃었다. 2곳의 우물조차도 물이 말라가고 있다. 암석이 많은 지역이라 펌프 우물을 설치해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월드비전 섬머아일랜드 지역개발사업장을 맡고 있는 프라사드 키리헤나(54)씨는 "물 부족 현상으로 주민 중 상당수가 신장결석에서 피부병 등을 앓고 있다"며 현지 사정을 설명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환영 인파가 거리에 가득했다. 이 마을이 조성된 이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적은 처음이라는 설명이다. 불교 관련 휴일인데도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은 이 곳의 심각한 현실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환영 행사가 이어졌다. 식수 시설이 들어서게 될 곳에는 이미 4m 깊이의 웅덩이 4개가 만들어졌다. 4곳에 차례로 일행들이 들어갔다. 초석을 집어 넣는 의식을 위해서다. 이어 스님의 축원 기도 등 간단한 절차가 끝난 후 마을 회관에서 이번 식수사업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감사 행사가 준비됐다. 환영 행사에 참여한 10대 소녀들의 하얀 옷이 피부색과 대비된다.
우리 돈 2억5천만원이면 이 곳 800가정의 식수 문제가 해결된다. 3천 주민의 식수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월드비전 인천지부의 꿈이 이제 첫 삽을 뜬 것이다. 인천 시민의 소박한 도움이 조금씩 모여 섬머아일랜드에서 거대한 파도를 이루기 시작했다.
/스리랑카=이주영기자 (블로그)leejy96

북부교육청 윤낙영 교육장이 결연아동인 니뿐디와 만났다.
식수사업은?
월드비전 인천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스리랑카 식수 시설 지원 사업은 수도 콜롬보에서 동쪽으로 약 200㎞ 떨어진 세바나갈라의 누게갈라야야군에서 진행되고 있다. 5개 마을로 구성된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역 주민은 약 3천여 명으로 800세대를 이루고 있다. 식수 시설 지원 사업의 핵심은 800가정 3천여 명의 주민들이 안전한 식수를 공급해 물부족으로 인한 여러 질병들을 막는 것이다.
이에 저수지 옆에 지름 6m, 깊이 6m의 대형 우물을 만들어 임시로 저장한 물을 약 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저장탱크 4곳에 분산 저장한다.
이 곳 탱크에서 5개 마을 800가정에 식수를 공급할 수도관과 수도탭을 설치할 예정으로 이번 방문 시점에 맞춰 공사를 착공해 내년 말 공사를 끝낼 예정이다. 공사비는 약 26만 달러로 우리 돈 약 2억5천만원 남짓이면 수십 년 동안 식수난에 시달린 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지난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지원해 만들어진 식수 시설이 인근 지역에 설치돼 있다.
 
내년 말 준공을 앞두고 저장탱크가 들어설 식수 사업 현장.
 

섬머아일랜드에서 골포트로 향하는 길에 지난 2004년 말 쓰나미 피해를 복구하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한국국제협력단이 지난해 월드비전 스리랑카와 공동으로 설립한 식수 저장 탱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