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최병관의 마지막 소금밭 - 3 염전사람들
뙤약볕 아래 검게 탄 염부가 상의를 벗어던진 채
소금을 실어나르고 있다. (1994.7.13)
동녘하늘이 검붉은 보라 빛으로 물들기 시작 하는 이른 아침이면 염부들은 어김없이 염전으로 향한다.
창고 밖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소금을 자루에 담는 일이며, 염전 저수지에서 퍼 올린 바닷물을 염밭에 저장 하는 일 외에 소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일을 하기위해서다. 수차에 올라가 발로 밟아 소금물을 퍼 올리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은 소금의 계절이다. 소금에 묻혀 죽어도 모를 지경으로 태양과 바닷물은 줄기차게 소금의 원료를 제공한다. 염부들은 새벽부터 별이 초롱초롱 빛나는 시간까지 소금 일을 해도 끝이 없다.
그 계절이 다가오면 일손이 모자라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염전 일을 돕는다. 염부들의 도시락은 두 끼의 새참을 포함해서 5회에 걸쳐 식사를 한다. 워낙 소금 만드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금슬이 좋은 부부는 새참마다 고실, 고실 한 잡곡밥을 꾹꾹 눌러 막걸리와 함께 함지박에 담아 머리에 이고 염전으로 향한다. 가끔씩 젊은 아낙은 찐 계란을 싸가지고 와서 염부들 몰래 신랑에게 건네주다가 들통이 나면 하루 종일 놀림감이 된다.
요즘처럼 계란이 흔한 시절이 아니었기에 충분히 그럴만했다. 계란이 힘을 돋우는 보약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기에 젊은 아낙의 마음을 염부들이 모를 리 없다. 특히 막걸리에 찐 계란의 만남은 염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환상적인 메뉴였다. 그래서 찐 게란 한 줄을 새참으로 내오는 날이면 그 날은 염부들의 잔칫날이 되었다.
4호염전에 다니는 옆집의 마음 착한 털보아저씨는 가끔씩 보너스로 받은 소금 자루를 어깨에 메고 우리 집을 찾았다. 김장 때 쓸 소금을 미리 선물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고마워서 땅속에 묻어 놓은 막걸리를 베보자기에 걸러서 한주전자를 대접한다. 털보 아저씨는 누런 막걸리를 물마시듯 벌컥벌컥 단숨에 마시고는 도둑놈 손 보다 큰 손가락으로 김치 한 쪽으로 안주를 대신한다. 털보아저씨는 어린 나를 바라보면서 "너도 빨리 커서 염전에 취직을 해야지" 하시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린 나는 한편으로 기분이 좋으면서도 염전 일보다는 사탕공장에 취직을 하고 싶었다. 왕사탕을 실컷 먹고 싶어서였다. 오죽 사탕이 먹고 싶었으면 외할머니에게 이다음에 사탕장수 딸에게 장가를 가게 해달라고 했을까.
고향 후배는 일찌감치 염전에 취직을 하여 그 힘든 염전 일을 한마디 불평 없이 해냈다. 온몸은 구리 빛으로 변했으며 근육이 툭툭 불거져 나온 후배가 부러웠다. 60키로나 되는 소금자루를 거뜬히 어깨에 메고 궤조차에 싣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씩씩하며 멋져보였다.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천하장사요 부지런하기로는 으뜸이었다. 완장을 차고 소금 도둑을 잡는 감시를 제외하고는 염전 사람들은 모두 마음이 착하고 인심이 후했다.<계속>
 
고향후배는 염전에서 그 힘든 노동을 하면서 한마디 불평없이 열심히
살아간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1993.3.11)
1. 한 염부가 소금물을 퍼 올리기 위해 수차를 밟고 있다. (1990.8.1)
2. 소금은 30㎏·50㎏의 자루에 앉은뱅이 저울에 달아서 정확하게 담는다.(1991.6.8)
3. 50㎏의 무거운 소금자루를 거뜬히 어깨에 메고 궤조차에 쌓는 고향후배.(1992.5.21)
4. 뙤약볕 아래 염부의 몸에 구슬땀이 흐르고 있다(1994.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