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범구 가천의대 길병원 진료부원장
우리 의료지원단은 지난 10월14일 방콕을 경유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새벽 4시에 도착, 前 파키스탄 수상을 만난 후 아보타바드 대학병원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곧바로 의료봉사를 시작하였다. 8만 명의 사망자가 생겼을 정도로 현지 상황은 심각했다. 우리가 머무른 아보타바드에는 여진이 계속 발생해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뛰쳐나오기 일쑤였다. 민심도 흉흉해 버스 및 물자보급 차량 약탈이 잦았고, 파키스탄은 총의 소지가 허용되어 약탈자들이 기관총을 들이대면 경호원이 있어도 꼼작 없이 당한다고 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현지 병원에서는 몰려드는 환자를 모두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6회의 수술을 우리팀이 담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례가 없었던 것이라 했다. 수술 기구 및 수술방 환경, 소독, 특히 현지인의 위생관념이 열악해 어려움이 많았다. 현지인들도 맨 처음에는 우리들의 꼼꼼함에 불만을 토로하다가 나중에는 ‘한국 의료진이 최고’라고 하며 우리가 하는 대로 따라하기도 했다. 우리팀은 병원 외부에 텐트를 설치하고 내과, 외과로 나눠 응급 진료를 하였는데, 현지병원과의 협조로 x-ray를 찍을 수 있어 전문적인 치료가 가능했다. 우리팀의 치료가 깨끗하고 신속하다는 입소문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한 환자도 거의 전부 우리 텐트로 와서 치료를 받으려고 하였다. 현지인 대부분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번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아주 심한 파상풍 환자가 우리 쪽으로 후송돼 왔다. 한국인 의사는 증세가 매우 심각하다고 진단을 내리고 조심스럽게 진료를 시작했는데 현지인 의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파상풍 주사 60대를 환자 몸 이 곳 저 곳에 놓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어린 환자를 탈수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도중에 살아 있는 회충을 토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의료 봉사기간 내내 우리팀원의 자세는 내가 보기에도 매우 자랑스러웠다. 긴 진료 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열정을 가지고 피곤한 기색 없이 활동을 해 주위 타병원에서 온 의료진으로부터 칭송을 받을 정도였다. 그 곳에서는 별로 지친 기색이 없어 ‘원래 그렇게 튼튼한가’ 했더니 귀국 후 모두가 하루 종일 잠을 잤다 하니, 그간 파키스탄 환자에 대한 사랑으로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많은 위험이 있었지만 우리가 지치지 않고 안전하게 진료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해 주신 가족들과 우리병원 직원들의 중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족들과 병원 직원들 그리고 끝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