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이 11일 내놓은 보고서 「향후 대기업 환경변화와 대응과제」는 최근 정부의 재벌정책에 재계가 백기를 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보고서 내용을 보면 ▲실패한 경영진의 퇴진 ▲5대그룹 계열사의 자발적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신청 ▲독립소그룹 체제 개편 ▲총수의 경영간섭 중단 ▲소액주주의 이사회 참여 등이 골자다.

 재계의 싱크탱크가 만들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정부가 재벌개혁을 위해 내놓은 정책적 과제들과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실천방안이 담겨 있어 마치 정부에서 내놓은 재벌개혁 교과서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좌승희 한경연 원장은 『기존의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수용한 상태에서 기업이 어떻게 구조조정을 해나갈지를 염두에 두고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좌원장은 시장 제재가 더 무서운 시대이기 때문에 기업이 능동적으로 개혁을 주도할 수 밖에 없게 됐다고 밝히고 있으나 최근 정부와 재계간 관계를 고려하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형편이다.

 정부는 재무구조 개선 중심의 재벌개혁 정책을 최근 지배구조 개선 위주로 선회했다. 한진 계열사에 대한 특별세무조사, 이건희 삼성 회장의 우회 증여혐의 조사, 현대그룹 주가조작 조사 등이 그 예다. 재벌개혁의 칼날이 총수를 겨냥하고 있다는게 재계의 인식이다.

 이런 가운데 재계로서는 더이상 수동적인 자세를 유지했다가는 「총수 청산」이라는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해왔으며 재계 일각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현 단계에서 정부 정책에 적극 동조하자』는 정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경연 보고서가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한마디로 「백기」를 든 셈이다.

 요즘 재무구조 개선에 여념이 없는 김우중 전경련 회장(대우 회장)이 이런 성격의 보고서가 필요함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점도 이같은 해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재계가 이 보고서대로 움직일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