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오아시스의 어머니 `시리다리야'-3.우즈베키스탄 체리가 익으때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우즈베키스탄은 그 명성에 걸맞게 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다. 수도 타쉬켄트는 중앙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공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타쉬켄트의 도로 또한 국제도시답게 방사선으로 뻗어있는데, 시외곽 지역까지 확장되고 있는 도로는 국가적 프로젝트인 ‘신실크로드 건설’과 맞물려 있다. 즉, 동서남북의 국가들과 도로를 연결함으로써 실크로드의 재건을 통한 국가발전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장기 프로젝트는 국민들의 호응과 일체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즈베키스탄은 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타쉬켄트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방사선 도로의 중심에 공원이 하나 있다. 아미르 티무르 공원이 바로 그곳이다.
 이 공원의 주인공도 시대에 따라 달랐다. 구소련 시절에는 칼 막스가 있었고 레닌이 있었다. 스탈린과 카우흐만 장군도 위풍당당했다. 아미르 티무르가 주인공이 된 것은 독립 후에 까리모프 대통령에 의해서다.
 아미르 티무르는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이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자로 신생 독립국인 우즈베키스탄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우리나라가 충무공 이순신을 그리했듯이 국가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모티브로 아미르 티무르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까리모프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도를 이끌어내는 이미지로도 작용함과 동시에 그 옛날 실크로드의 영화를 되찾자는 것과도 상통하니 ‘길을 닦는 것이 무어 대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실로 엄청난 프로젝트임에 틀림이 없다.
 국가 경제발전과 함께 민족 정체성 확립의 기틀로 삼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은 우즈벡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알리세르 나보이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은 전쟁으로 점철된 험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랜 전쟁은 물질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까지도 황폐화시켰다.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고 용기를 불어넣는 것은 정감어린 서정시였다. 삶의 가치와 의미, 민족의 사랑을 깨우쳐준 나보이의 시는 그것이 우즈벡의 언어로 우즈벡의 강산을 노래했기에 우즈벡 민족을 하나로 엮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를 칭송하여 건물과 도로에 ‘나보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사랑하는 남녀가 나보이 동상 앞에 꽃을 받치며 결혼을 맹세하는 것에서 이미 ‘민족의 아버지’임을 엿볼 수 있다.
 나보이 이름을 딴 건물이 여러 곳 있지만 ‘나보이 극장’이 제일 먼저다. 타쉬켄트의 대표적 명소의 하나인 이곳은 2차대전 때 잡힌 일본군 포로들이 완공했다. 건물에는 6개의 휴게실이 있는데 각각 타쉬켄트, 사마르칸드, 부하라, 히바, 테르미즈, 페르가나를 상징한다. 천4백석의 오페라홀에서는 세계 정상급의 오페라와 발레단의 공연이 있는데, 가격은 우리 돈 2천원이면 충분하다. 타쉬켄트를 찾는 또 하나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나보이 문학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의 문학활동과 저작물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3층에는‘낙동강’으로 유명한 작가인 포석 조명희의 유품들이 전시된 기념관이 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의 봄은 살구꽃 체리꽃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의 초여름 기온과 같은 5월이 되면 체리를 시작으로 각종 과일이 쏟아진다. 도로 중앙의 철길을 따라 흔들흔들 여유 있게 달리는 뜨람바이(노면전차)를 타고 바자르의 과일가게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과일은 물론이고 열대지방의 과일까지 다양하다. 특히, 사막지역이어서 당도가 매우 높다.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하니 그야말로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제 철의 과일이 맛있다’고 했듯이 한창 쏟아지는 과일이 제일 좋다. 5-6월은 체리가 한창이다. 거봉 알 만한 검붉은 체리가 1㎏에 한국돈 천원이면 살 수 있다. 순간 국내 백화점에서 새끼 손톱만한 체리 10알을 오천원에 샀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누구라 할 것 없이 여행 내내 체리만 먹었다.
 타쉬켄트 우즈벡 부활의 구심점인 아미르 티무르 공원과 나보이 극장을 연결해 주는 곳이 브로드웨이 거리이다. 스크베르(소공원, 네거리 공원)라는 이름이 있지만 ‘브로드웨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주변에 대학들이 있고, 젊음과 자유 그리고 낭만을 구가하려는 대학생들이 부른데서 시작된 듯하다. 브로드웨이는 각종 골동품, 장신구, 책과 그림 등을 팔고 사는 사람들과 젊은 연인들로 길을 메운다. 길 양쪽으로는 노천 까페가 줄지어 있는데 아름다운 리듬의 음악으로 오가는 연인들을 유혹한다.
 
 ‘오세요, 봄의 열기 속으로 와서 잔을 채워요/ 회한의 겨울옷 훌훌 벗어 던지고/ 그대의 웃음꽃 만발한 까페 브로드웨이로/ 오세요. 장미넝쿨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 곳’
 
 그러나 연인들은 쉽게 유혹당하지 않는다. 사랑의 체리향기가 이미 둘만의 공간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에서 만난 동방대학교 한국어과 학생들의 희망은 한국에 유학가는 것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KA)에서 파견된 교사들이 한국어를 가르치지만 회화중심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부족함을 느낄 뿐 아니라 한국에 관한 지대한 관심을 몸소 체험하고 더 많은 공부를 하고자 함이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한국어과가 있는 대학은 동방대와 더불어 니자미사범대, 사마르칸드 국립대 등이다. 이곳 한국어과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한글로 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하는 것이다. 언어와 문학작품을 빼고는 한국책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역사와 문화는 개략적인 내용을 러시아어로만 배울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재의 시급성을 절감했다.
 외국인 한국전공자들이 안심하고 배울 수 있는 교재개발은 누가 뭐라해도 우선되어야 할 과제다. 더군다나 이곳에도 우리의 드라마인 ‘겨울연가’와 ‘가을동화’가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통상사업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때 친한파를 양성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문화사업을 등한시한다면 이는 하늘이 준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우즈벡 국민의 아버지인 나보이의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대의 가슴에는 고결한 빛이 빛나고 있다/ 그대 앞에는 정의로운 신념의 길이 열려 있다/ 그대여, 학문을 배우고 익혀라!/ 그리고 무지의 세계를 정복하라’
 
 세계 최고의 교육열이 오늘의 우리나라를 만들었다. 앞으로도 그래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세계에 내세울 것은 교육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교육이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의 교육은 전 세계인을 포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학문에 대한 열정과 신념도 중요하지만 우리 것에 대한 올바른 지도와 가르침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사회이다. 지식창조에서 우위를 선점할수록 그 나라의 문명권은 더욱 확대된다. 아울러 세계는 이제 총칼로만 지배할 수 없는 시대다. 오히려 ‘총칼보다 강한 것이 펜’이듯이 전문지식의 소유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나보이 시가 주는 메시지도 바로 이것일 터, 우리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옛날의 실크로드를 오늘날의 노하우로드(know-how road)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말이다. /허우범 인하대 대외협력팀장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