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동서문명의 십자로를 찾아서-1.오아시스의 어머니 `시르다리야'
  열사의 땅 중앙아시아는 수천 년간 동서 문명의 가교 역할을 해왔으며, 그들이 꽃 피운 문명은 세계문명 그 자체였다.
 오늘부터 화요일마다 ‘중앙아시아, 동서 문명의 십자로를 찾아서’라는 간판으로 인하대학교 허우범(43) 대외협력팀장의 여행기를 연재한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문명을 탄생시킨 3대강 (시르다리야, 자랍샨, 아무다리야) 유역의 오아시스 도시를 하나씩 찾아 간다. 120여개에 달한다는 종족들이 동서 문명을 연결한 고속도로라 할 초원과 사막, 그리고 그곳에서 영욕을 함께한 문명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인하대학교와 동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필자는, 중국을 비롯하여 인도, 베트남 및 중앙아시아를 다년간 답사한 전문 여행가다. 이번 연재는 수필처럼 편안하면서도, 그곳의 역사와 문화, 주민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애정 어린 리포트가 될 것이다.
 
                              1.오아시스의 어머니 ‘시르다리야’
  
 여행은 언제나 설레임과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그것이 평소 동경의 대상지였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1991년 12월, 구소련 해체 후 탄생한 중앙아시아 5개국이 바로 그 동경의 대상지였다. 이곳은 우리가 ‘실크로드’라고 부르는 동서문명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며, 21세기 서구문명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동양문명이 다시 그 원류를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교류의 길을 닦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에 이러한 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모교이기도 한 인하대학교가 개교 50주년을 맞아 여러 가지 특별사업을 시행하였는데, 교육부로부터 2년 연속 물류특성화대학으로 선정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실크로드와 고선지 장군의 흔적을 찾는 중앙아시아 학술답사 취재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몇 번의 추가답사를 통해 나는 실크로드 문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역동성과 다양성이 어우러져 21세기 지구촌의 화합을 이끌어낼 커다란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 흥분된 것은 실크로드 지역이 역사의 한 구석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열어갈 ‘살아있는’ 문명으로 지금도 끊임없이 변모하는 열사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고도를 유지하자 만리장성이 산맥들 사이로 나타난다. 진시황이 완결하여 중국 최대의 문화유산이라고 자랑하는 만리장성. 그 웅장한 토목의 역사는 지구 밖에서도 볼 수 있지만 문명교류사적 측면에서 보면 텃밭과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배타적 경계로만 보인다. 인간이 온 천지에 길을 만들고 그 길을 통해 문명이 왕래한다면 만리장성은 ‘문명’이라는 대하(大河)를 역류시키는 아집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하긴 만리장성의 몇 천배 높은 천산산맥과 파미르고원도 넘은 문명의 힘을 만리장성인들 어찌 거역할 수 있으리오.
 이러저런 생각을 하다 창밖을 내다보니 적막 지상과 쪽빛 창공 사이를 마치 구름인 양 내가 흐르고 있다. 아! 적어도 이 순간만은 신선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태백인들 이러한 경지에 오를 순 없었을 것이다. 특히, 창공에서 반짝이는 초승달이 별 꼬리를 달고 떠있는 것을 보는 순간, 터키를 비롯 유라시아에 위치한 나라들의 국기에 별이 그려진 이유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가 대자연 속에서 진리를 찾아 행하는 것이라면 이를 서로 부정 내지 의심한다는 것은 편협의 울타리에서 울어대는 독불장군 개구리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의 강물은 파란색으로 그려야 하지만, 중국의 강물은 회색이나 짙은 밤색으로 그려야만 정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크로드는 무슨 색으로 그려야 하는가.
 타쉬켄트.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기 전에 중앙아시아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도시. 그만큼 타쉬켄트는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도시다. 아울러 타쉬켄트는 사마르칸드, 부하라, 히바로 이어지는 오아시스를 낀 낭만적인 실크로드 도시들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타쉬켄트의 야경은 마치 연인들이 자주 찾는 숲 속 공원처럼 아름답고 조용하다.
 인류 문명의 토대가 강에서 이루어졌듯이 중앙아시아의 주요 오아시스 도시들도 강이나 하천과 연결되어 있다. 천산산맥에서 발원하여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 아랄해로 흘러가는 시르 다리야(강)와 아무 다리야는 이들 오아시스 도시들의 어머니와도 같다.
 타쉬켄트도 치르치크와 시르다리야 두 강을 원천으로 대상무역의 교역로 역할을 하면서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는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도시들이 오아시스 지역을 거점으로 작은 왕국이나 도시국가로 성장해 온 것과 마찬가지이다. 투르크어로 ‘돌(타쉬)의 나라(켄트)’란 의미를 갖고 있는 타쉬켄트는 중국문헌에서도 석국(石國)을 비롯하여 자설국(者舌國), 자시 등으로 알려져 왔다. 타쉬켄트란 이름은 11세기경부터 불려졌으며 실크로드의 교역로로서 번성한 시기도 이때였다.
 석국으로 불리게 된 까닭은 이슬람이 중앙아시아에 세력을 미치기 전인 8세기 중반까지의 금 세공업 발달과 관계가 있다. ‘차치켄트’라 불리던 타쉬켄트는 동서 교역도시로서 몽골지역에서 생산되는 금을 사다가 가공해서 팔았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를 대부분 신봉한 때에도 마니교, 불교, 유대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등이 병존하여 종교적으로도 상당히 유연하였다. 특히,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당나라 장수가 된 고선지 장군이 서역정벌을 통해 실크로드를 장악한 기점이 바로 지금의 타쉬켄트인 석국이었다.
 타쉬켄트는 번영과 좌절을 함께 해왔다. 그것은 시대의 지배자들이 반드시 차지해야할 병가필쟁(兵家必爭)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몽골의 침입, 티무르 제국, 코칸드 칸국의 지배를 거쳐 1865년 러시아군의 점령까지 실로 타쉬켄트는 중앙아시아의 노른자였다. 타쉬켄트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지층이 10세기를 전후하여 최근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게 발견되는데 이는 곧 타쉬켄트, 아니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타쉬켄트의 찬란한 문화유산은 역사의 악순환 속에서 많이 파괴되었다. 특히, 1966년의 대지진은 전쟁보다 무섭게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타쉬켄트는 현대적 도시로 부상하게 된다. 소련 각 공화국의 기술자와 3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투입되어 불과 몇 년 만에 동부지역에 새로운 타쉬켄트를 재건했기 때문이다. 동서지역으로 크게 구분되는 타쉬켄트는 동부지역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교통의 중심지라면, 구시가지인 서부지역은 우즈벡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하겠다.
 ‘우즈벡 민족이 사는 땅’이란 뜻인 우즈베키스탄은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중앙아시아 대륙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흔히 ‘스탄 형제들’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이 모두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타쉬켄트는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다. 우즈벡인 외에도 러시아, 타직, 카자흐, 타타르, 카라칼팍인을 비롯 스탈린 시대 강제로 이주되어 살고 있는 고려인까지 약 120여개의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민족 전시장과도 같다. 실크로드는 이처럼 민족간의 교류도 활발하게 열어 ‘인류는 하나고, 만인은 평등하다’는 진리를 몸소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개별성과 다양성이 함께 인정되고 이를 미래지향의 ‘화합’으로 엮어나가는 역동성이 보이는 실크로드는 분명 빨주노초파남보가 각각의 선명한 색체를 가지고 하나의 커다란 무지개로 하늘의 문을 열어가는 곳임에 틀림이 없다.
 평균고도 해발 480미터인 타쉬켄트는 ‘분수의 도시’이기도 하다. 연 강수량이 300㎜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길마다 분수를 뿜어대고 있을까 의아스럽다. 그러나 잘 발달된 관개수로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의구심은 감탄사로 바뀐다. 즉 시르다리야와 아무다리야를 이용해 예부터 관개수로 사업이 전개되었고, 구소련시절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덕택에 비가 적은 사막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면화생산국으로 변모했으니 말이다.
 타쉬켄트도 치르치크강에서 시작한 바즈수 운하를 포함 4개의 운하가 흐르고 있어 거리는 다양한 분수로 넘쳐나고 더위는 한껏 수그러든다. 또한 초목은 항상 푸르름을 자랑하고 아이들은 벌거숭이가 되어 물장구를 치며 논다. 이런 모습은 비단 타쉬켄트만이 아니다. 자동차를 타고 시골을 달려가며 보아도 집집마다 도랑에 물이 가득 흐르고 마을 어귀 저수지에도 벌거숭이 아이들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 위엔 면화가 촘촘하고 대지를 적셔주는 물길로 인해 초록은 하얀 목화를 한 아름씩 물고 있다. 또한, 초원은 양치기 목동들과 삽살개가 한 몸으로 어울리고 그 옆에는 말들이 천산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중앙아시아 오아시스는 이렇듯 느긋한 여유 속에 자유로움이 있다. 잠시 이러한 여유로움에 취하고자 강물에 발을 담근다. 5월임에도 발목이 시리다. 천산산맥의 만년설 녹은 물이 세상의 자유로움에 대해 냉정하고 뼈저리게 일러주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