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비를 맞는건 분명 행운이다.
 우기인 겨울철에도 비가 내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지난달 18일 카이로 국제공항에 내리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워낙 귀한 곳이라 우산을 쓴 사람은 거의 없이 그냥 비를 맞는다.
 이집트는 최근 경제사정이 그리 좋지 못하다. 급격한 환율상승으로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이 무려 5.5%에 달한다. 올해는 정부의 강력한 인플레이션 억제정책으로 3.5%대에서 물가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실업률도 10%대(정부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실업률이 15%∼17.5%라는 통계도 있다. 올 10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이집트는 지난 24년간 무바락 대통령이 통치해 오고 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도 당선을 노리고 있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한다. 세계 4대문명 발상지로, 거대한 불모의 땅 아프리카 대륙에서 찬란한 고대 문명의 꽃을 피웠다.
 역사적으로 이집트는 고대문명과 그리스, 로마 문명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한국의 5배쯤 되는 면적이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전 국토의 60%에 지나지 않는다. 7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지만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이 800달러 내외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인구 1천망명이 사는 아프리카 최대 도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신시가지에는 특급호텔과 서구식 빌딩이 즐비하지만, 구시가지에는 수많은 모스크와 성벽, 중세 주택 등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거리에는 최신형 자동차와 마차, 노새가 끄는 수레 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카이로는 한마디로 복잡한 도시다. 거리에는 아랍어로 쓰여진 간판과 문구가 어지럽게 걸려 있고, 낡은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매케한 매연은 눈이 따가울 정도다. 곳곳의 모스크에서는 밤 낮 없이 코란을 읽는 소리로 매우 시끄럽다.
 카이로박물관은 이집트 5천년 역사를 집대성한 곳이다. 전시품은 세계 어느 박물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진귀한 것들이 많다. 1층에 들어서면 바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열쇠가 됐던 ‘로제타석’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모조품이라는 사실에 실망스럽다. 진품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박물관 자체도 프랑스에서 지난 1875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희귀한 유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훼손이 거의 되지 않은 람세스 2세 조각상이며, 고왕국 유물이 줄지어 진열돼 있다. 교과서나 사진에서 본 것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박물관의 하일라이트는 2층으로 올라가서 부터다. 유명한 투탕카멘 왕의 유물들이 집중 전시돼 있는 곳이다. 기원전 1350년부터 이집트를 지배하다 18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 파라오다. 황금마스크는 그 중 핵심이다. 관람객들은 9㎏에 달하는 황금마스크 앞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한다.
 투탕카멘 왕의 무덤을 처음 발굴한 고고학자 카터는 당시 흥분을 이렇게 고백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내부에서 흘러 나오는 뜨거운 공기가 등불의 불꽃을 흔들었다. 눈이 내부의 어둠에 길들면서부터 으스름 안개 속에 묘실안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한쪽이 환하게 떠올랐는데 분명히 황금에 반사되는 빛이었다.”
 투탕카멘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마스크 부분은 신비로운 제문들이 새겨져 있다. 값비싼 돌과 유리에 황금을 박은 우레우스, 코브라와 함께 머리장식인 황금두건은 청색과 녹색의 줄무늬로 이마를 장식하고 있다. 마스크 눈은 모서리에 빨간색이 가미된 수정과 흑요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신성한 콧수염도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파라오의 미이라를 감싸던 의미를 따지지 않더라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조각품 그 자체다. 사진촬영을 일체 금지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이 외에 왕묘에서 발굴된 가구와 미이라를 담아 뒀던 관, 의자 등을 만날 수 있다. 파라오들의 미이라를 진열해 놓은 전시실도 들어가 볼 수 있다.
 유물이 워낙 많다 보니 일부는 전시해 놓았다기 보다는 첩첩이 쌓아 놓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렇지만 현지 가이드는 진짜 귀한 이집트 유물을 더 자세히 보려면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을 가보는게 맞다고 귀띔해 준다. 그만큼 강국들의 약탈이 심하게 이뤄졌다는 얘기다.
 기자지구 피라미드는 이집트 여행의 필수 코스다. 만약 여기를 다녀가지 않는다면 이집트 여행은 하지 않은 것과 다름 없다. 기자지구에 들어서면 멀리서도 피라미드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규모가 워낙 웅장하기 때문이다.
 이집트 4대왕조(기원전 2613년∼2494년)의 왕인 쿠푸왕과 그의 아들 카프레왕, 손자인 맨카우레왕의 미이라가 있던 무덤이다. 이 중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일명 대피라미드로 규모가 가장 크다. 높이가 146m, 밑변 길이가 230m며, 입구는 정확하게 정북쪽으로 향해 있다. 무게가 2톤에서 20톤의 석회암 230만개를 쌓아 올려 만들었다. 원래 피라미드는 백색의 외장석으로 덮여 있었으나, 지금은 카프레왕 무덤의 꼭대기에서만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피라미드 내부는 왕의 방과 왕비의 방, 대회랑, 통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좁고 낮은 통로를 기어오르다시피 한참을 올라가야 하지만, 막상 볼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스핑크스는 카프레왕 피라미드 정면에 세워져 있다. 사람 머리에 사자의 몸을 가진 형상으로, 피라미드를 수호하듯 당당하게 서 있다. 수 천년이 흐르는 동안 피라미드의 곁을 지켜왔다. 높이 20m, 길이 73m로, 사막의 세찬 모래바람에 의해 해마다 조금씩 마모가 진행되고 있다.
 매일 밤 이곳에서 이뤄지는 빛과 소리의 쇼도 볼거리다. 단순히 조명을 비추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레이저를 이용해 1시간여 동안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밤에 열리기 때문에 사막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밤바람도 꽤나 상쾌하다. /백종환기자 blog.itimes.co.kr/k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