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가마 값이 단 돈 만 원까지 떨어져도 저는 농사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는 ‘천하지대본’ 인 ‘농자’(農者)니까요.”
대를 이어 오로지 농사만 지어왔던 최창선(48·이천시 대월면)씨. 하지만 최 씨의 이같은 다짐 이면에는 허탈감이 함께 배어나고 있다. 최씨의 새해는 그 어느 때보다 만만치 않은 무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 논밭에서 흙과 더불어 30여년을 보낸 그에게, 최근의 쌀 시장 개방은 지금까지 마주 한 그 어떤 시련보다 큰 시름을 안겨주고 있다.
“쌀 수입 개방이 피할 수 없는 농촌 현실이라면, 이제는 그런 수입쌀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쌀을 생산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최씨의 가장 큰 걱정은 먹고 사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값 싼 수입쌀 때문에 혹시나 후손들이 우리만의 전통 양식을 잊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 그는 쌀 가격에 상관없이 자식 같은 쌀 농사를 계속 짓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그의 고장은 예로부터 자채쌀로 임금님께 진상을 올렸던 이천시. 특히 대월면의 쌀은 최고라는게 최씨의 자랑이다.
고등학교(현 여주정보고) 시절, 학교 다니는 틈틈이 아버지의 농사 일을 돕다가 아예 대를 이어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은 최 씨.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싶은 욕심 때문에 고민도 많았지만, 농군을 천직으로 알고 30여년 세월을 버텨왔다.
기왕 농사를 짓기로 한 마당에 최 씨는 농군이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기로 하고, 농사 일 틈틈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갖가지 일에 뛰어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거친 농사일로 주름살 펴질 날 없는 지역 농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 99년부터 기꺼이 마을 이장직을 맡아오고 있다. 지난 해부터는 아예 각 마을 이장들의 모임인 대월면 이장단협의회장에 선임돼 지역 어르신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기 위한 갖가지 행사를 앞장서 치르고 있다.
최 씨는 지난 해부터 쌀 농사와 함께 우리 고유의 밀 농사를 짓고 있다. 아직 상품화하지는 않았지만, 제분을 거쳐 상품화되면 주민들에게 나눠줘 ‘우리 밀’을 맛보게 할 생각이다. 이같은 최씨의 밀농사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보릿고개 등으로 아주 어려웠던 시절, 값 싼 수입 밀이 밀려들어와 입맛을 사로잡고 결국 이로 인해 밀농사를 지었던 국내 농가들이 밀농사를 포기해야만 했던 과거가 있었지요. 쌀도 이와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 밀 농사를 지었습니다.”
비록 작은 규모지만, 최 씨는 밀밭을 통해 땅의 경고를 들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새벽 4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최씨. 매서운 추위와 어둠을 뚫고 들판으로 향하면서 그는 분신같은 땅들이 추위와 어둠에도 생명을 키우고 있음을 느낀다. “8천여평 땅들이 생명을 키우고 있는 한 희망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거센 농산물 수입 파고 앞에 마주 선 최 씨. 그 앞에 닥쳐오는 파고는 예전의 그가 30년 동안 겪은 그 어떤 시련보다 혹독할지도 모르기에, 그의 새해 다짐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하기만 하다./이천=이백상기자 b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