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형 감독의 '아카시아' 상영과 함께, 오늘로 제8회 부산영화제의 막이 내린다. 으레 그랬듯 올해도 어김없이 크고 작은 인상들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다. 가장 강렬한 인상은 역시 관객들에게서 비롯된다. 흔히 '감독과의 대화'라고 불리는 GV(Guest Visit)에서 드러나는 관객들의 그 진지하고 뜨거운 응답 태도에서...
 지난 해 비평가 주간이란 명칭 하에 월드 시네마 하위 섹션으로 신설되었으나 1년 만에 독립 섹션으로 거듭나면서 명칭까지 바뀐 크리틱스 초이스 담당 4인 평론가 중 1인으로 GV에 참여하면서, 난 또 다시 관객들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목하 한국 영화 산업의 파이를 날로 키우고 있는 이 땅의 일반 대중 관객들과는 다분히 다른 취향 및 지향을 지닌, 아주 특별한 관객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겠지만.
 평론가 못지않은 꼼꼼한 영화 읽기도 그러려니와, 생산자 혹은 창작자로서 감독을 보내는 그들의 무한한 애정과 존중을 목격한 때문이었다. 지난 7월 체코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목격한 바와 엇비슷한 성숙한 태도랄까. 흔히 GV는 한 차례만 하는 것이 관례지만 내가 진행을 맡았던 '솔트'라는 작품의 경우, 1시간 20분 가량 소요된 열띤 GV에 감동한 감독이 한번 더 하고 싶다는 특별 요청에 따라 예정에 없던 GV를 또 한 차례 하기도 했다. 그것도 부디 30분 전후로만 해달라는 영화제 측의 요청에 아랑곳 없이 근 한 시간 가량을.
 그 정도가 아니다. 영화를 직접 선정한 나조차도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을 성싶어 내심 적잖은 걱정을 했건만, 서울서 부산에 내려온 지 4일 째라는 어떤 여학생은 그때까지 자기가 본 작품 중에 '최고'라는 의견을 피력하기조차 했다. 27편을 예매했다는 어떤 젊은 남자는 24편째 보는 건데 가장 편하게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해, 나는 물론 감독조차도 놀라게 했다. 이런 이들이 있는 한, 부산 영화제 뿐만이 아니라 다소 많다는 지적 또한 받고 있는 이 땅의 숱한 영화제들이 생존해나갈 수 있겠다 싶다는 생각이 새삼 든 건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이런 강렬한 인상 속에서도 이번 영화제는 티켓 발급과 관련된 고질적 문제점등으로 인해 영화제 내내 커다란 곤혹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일반 상영이 개시된 영화제 둘 째 날(3일) 해운대 메가박스에서는 첫 회 상영 시간이 10였으나 이미 서너 시간 전부터 예매 표를 끊거나 현장에서 직접 표를 구하려는 인파들로 장사진을 치렀다고 한다. 울산에서 내려온 어떤 이는 영화제를 처음 찾는 설렘으로 무려 3시간째 기다렸다고도 했다. 아우성은 프레스 및 게스트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영화를 볼 수 없는 영화제"라는 치욕적 불평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많은 손님들로부터 터져 나오기까지 했겠는가.
 '하프 인사이더'(Half-insider)로서 스태프 아이디 카드를 발급 받았던 내 눈에도 이번 영화제는 유난히 '서툴게' 다가섰다. 전체적으로 손발이 잘 들어 맞지 않았다고 할까. 8회째면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어야 하건만 말이다. 근본적 처방이 강구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그 때문이다. 줄곧 논의되어왔으면서도 더디게 진척되고 있는 전용관 설립 건이나, 보다 탄탄한 상설적 인적 네트웍 구축 등등…
 전 찬일(부산=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