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史劇)이 발가벗었다.
 무거운 갑옷을, 화려한 궁중복을 벗어 던지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관객 앞에 섰다. 전장을 호령하는 장군의 위엄과 상놈을 부리는 양반의 권위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사극 앞에서 절인 오이지처럼 쪼그라 들었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황산벌’(감독·이준익)과 2일 관객에게 인사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감독·이재용)는 지금까지 사극과는 사뭇 다르다. 역사를 미화하지도, 귀족컴플렉스를 부추기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욕망의 지점은 언제나 일치한다고 단언한다.
 ‘황산벌’은 관객에게 두 방울의 눈물을 준다. 하나는 포복절도끝에 비죽 비죽 비어져 나오는 물기이고, 다른 하나는 페이소스의 결정체이다.
 영화배경은 134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기 660년 신라, 백제의 맞닿은 칼 날에 불꽃이 일더니, 이내 검붉은 피가 날을 타고 흐른다. 김유신의 나·당연합군과 백제 계백장군의 5천여 결사대가 충돌한 황산벌전투.
 “아쌀하게 거시기 해불자!” “함 붙어 보자카이!”
 ‘황산벌’은 당시 계백과 김유신이 사투리로 맞장을 떴을 거란 가정 아래 극을 풀어 나간다.
 결전을 앞둔 계백(박중훈)은 “죽기 전에 신라군 열 놈 죽였는가, 나한테 확인받고 죽으라고 알았제? 할당량 못 채우고 디진 놈은 나가 죽여 버릴겨 기냥!”이라며 눈을 부라린다.
 “계백이 지 처자식 직이고 나온거 보래이, 그래서 계백이 갸가 무서운 거래이, 갸는 그러 한방으로 병사들 독기를 확 올려 뿐거 아이가.” 김유신(정진영)은 경상도 사투리로 병사들을 단속한다.
 사투리는 참모들과의 작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들의 전략적인 거시기(핵심)는 머시기(전사)할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안 벗는다)한다”는 계백의 말을 엿들은 신라군이 ‘거시기’와 ‘머시기’를 해독하지 못해 식은땀을 흘리는 장면, 백제와 신라의 심리전에서 서로 자기나라의 기상천외한 욕으로 약을 올리는 씬은 백미다.
 계백이 처자식의 목을 베고 출정할 때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화에서 계백의 처(김선아)는 극약을 마시고 죽으라는 말에 “이녁(당신)이 칼이나 휘두를줄 알았제, 새끼들허고 나헌테 해 준것이 뭐씨냐! 나는 못 마시것다”라고 절규한다. 처자식을 내려다 보는 계백의 눈앞엔 물결이 일렁인다. “얼른 마시랑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 있다.
 최후의 장면까지 사투리는 계속 된다. 자신앞에 무릎꿇은 계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김유신은 말한다. “와 이리 덥노” 도전적 시선을 부릅 뜬 계백 왈 “겁나게 덥구마잉”.
 ‘황산벌’은 한국영화의 다양성은 물론, 역사의 재해석이란 측면에서 ‘수작’으로 꼽힐 만하다. 영화적 재미는 물론이고. 오지명, 신현준, 김승우, 전원주의 까메오출연도 이 영화의 구조주의 기법을 견고히 해준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조선시대 최고의 카사노바와 색골이 정절녀를 놓고 벌이는 육체적 사랑게임이다.
 겉으로는 세도가의 정부인으로 살아가며 남자들을 유혹하는 이중 생활을 영위하는 조씨 부인(이미숙). 과거급제했으나 관직을 마다한 채, 뭇 여인에 탐닉하고 시·서·화를 즐기는 이단아 조원(배용준). 말 못 할 첫 사랑의 상대이자 사촌 지간인 둘은 은밀한 사랑 게임의 동업자다.
 어느 날 조씨 부인은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정절녀 숙부인(전도연)을 범할 것을 요구한다. 음탕녀 조씨 부인은 조원이 성공하면 자신을 허하겠다는 미끼를 던지고 조원은 동침에 성공한다.
 ‘스캔들…’은 동침할 때 조차 체통 때문에 하의만 벗고 성관계를 하고, 달빛 흐르는 가을밤이면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며 정절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는 양반들의 실체를 파헤친다. 그러나 그것을 비난하기 보다 인간적인 모습임을 강조한다. 세 사람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는 결말은 사악한 사람에 문제가 있는 것일 뿐이지, 당시 사회적가치를 거스르는 ‘음지의 사랑’에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